추진력과 실천력을 가진 윈스턴 처칠
 
안희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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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은 제가 무척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그가 아니었다면 히틀러를 제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살아생전에 이미 위인의 반열에 올라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국제연합과 유럽연합을 제창한 인물이기도 하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처칠을 무척 존경하는 이유는 그런 위대한 업적들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사실상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위대한 인물로 우뚝 섰기에 더욱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좋은 조건과 환경, 그리고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도전으로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올라섰던 인물이 바로 처칠인 것입니다.

처칠이 안고 있었던 제약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버지의 괄시

처칠은 아버지의 인정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자라났습니다. 처칠의 아버지 랜돌프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재경부 장관이 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는데 그다지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가족들에게 무심했을 뿐 아니라 장남인 처칠에 대해서는 늘 한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 당시 상류 계층이 되는 길은 목사나 법률가나 군인으로 출세하는 것이었는데 랜돌프는 자신의 아내에게 처칠에 대해 말하길 목사가 되기에는 성격이 안 좋고 법률가가 되기에는 머리가 나쁘니 천생 군인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쓸모없는 놈이라는 막말도 하였습니다.

2. 어머니의 무관심

아버지로부터 괄시를 받으며 자란 처칠은 어머니의 사랑과 돌봄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제니는 바람기가 있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기 생활을 즐기기에 바쁜 제니는 아이들을 유모와 하인에게 맡겨놓은 채 노는 일에 바빴습니다. 아이들이 7살이 되면 집에서 먼 곳에 있는 기숙사에 보내놓고는 찾아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돈을 붙여주고 가끔 편지를 써주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교모임에 나가 노느라 사치를 일삼으면서 아이들을 방치했으니 처칠은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할 것입니다.

3. 좋지 않은 머리

처칠은 공부하는 쪽에 재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그 이후로 성적이 계속 좋지 않았으며 수업 태도마저 좋지 않아서 선생님들에게 꾸지람을 듣는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자주 교장실에 불려가 엉덩이가 불이 나도록 얻어맞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 대략 짐작이 갑니다. 그렇게 좋지 않은 성적이다 보니 옥스퍼드같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고 하는 수 없이 샌드 허스트 사관학교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나마도 두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으며 다행히 세 번째 시험에 자신이 준비해간 문제가 시험에 나온 덕분에 겨우 합격하였습니다.

4. 평생 괴롭힌 우울증

처질에게는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이 너무 심했던 처칠은 배를 타고 여행할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다에 뛰어들까봐 배의 난간 근처에 있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좋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우울증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후 세계적인 영웅이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가 엄청난 일중독증에 걸린 것은 우울증을 잊기 위해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처칠의 주치의였던 모란 박사는 처칠이 평생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5. 연약한 육신

정신적으로 우울증 때문에 고생을 한 처질인데 육신이라도 건강했다면 좋을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집안 자체의 내력 상 장수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처칠의 아버지만 해도 46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칠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단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건강하지도 못했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가 고통을 겪었던 여러 가지 병들 중에 가장 힘겨웠던 것은 폐렴이었는데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당시의 폐렴은 중병이었고 처칠은 폐렴 때문에 무척 힘들어 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도 그의 육신은 엉망이었는데 폐렴과 심장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6. 원만하지 않은 인간관계

앞에서 처질이 우울증으로 시달렸다고 했는데 그런 처칠이었기에 인간관계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처칠은 무척 변덕맞고 흥분을 잘하며 쉽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공공장소에서도 감정이 북받치면 눈물을 흘리면서 연설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처칠은 아래 사람에게 너무 엄격하여 원성을 샀고 윗사람에게는 너무 직설적으로 바른 말을 해서 미움을 샀습니다. 처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들들 볶여야 했는데 잠을 자고 있던 새벽에도 처칠의 전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야했고 잔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로운 처지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우울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처칠의 문제점들은 그 한 가지만 따져보아도 한계와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처칠은 그 모든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의 환경이나 처지나 모습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하였다는 점에서 정말 마음이 끌리는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옳다고 생각하는 일엔 말만이 아닌 실천을 보여주었는데 아무리 비난을 받고 공격을 당해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 일을 이루어내고야 말았으며 그런 처칠의 모습은 차츰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뢰할 만한 인물로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그런 지도자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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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의 대선 후보들 중에서 추진력과 실천능력을 볼 때 처칠과 가장 근접한 사람은 이명박 전서울시장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의 상황인데 그만큼 강한 추진력과 실천력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며 그런 면에서 이명박 전시장이 그 적임자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현재 그가 대선 후보들 중에서 1위로 독주하는 것도 다 그의 실천력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뿐인 정치에 신물이 났기 때문입니다.

기사입력: 2007/01/06 [11:3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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