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진상 규명 화살 어디까지 쏠 것인가.
 
관리자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사임을 했다. "담담하면서도 홀가분한 심정"으로 겸허하게 사태를 받아들인다는 신기남 열린우리당 전의장의 표정이 어쩐지 담담해보이지만은 않는다. 그의 말대로 "후련하게 떠날 수 있을 것"같지않게 느껴지는 것은 야당과 여당의 싸움의 쟁점에 있던 친일파 행적 규명에 대해 하나의 희생양으로 기억될 여지가 남기 때문이었다.

신의장은 진정 선친이 행한 친일파 행적에 대한 사죄를 묻고자 사임한 것인가. 여당이 앞으로 치러내야할 정치 싸움으로써 희생을 감행한 것인가, 결코 담담하고 홀가분해 보이지만은 않는 표정으로 국민들 앞에 선 그에게, 이제야말로 홀가분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때이다.

신기남의원의 부친과 관련된 보도가 나간 것은 불과 3일전이었다. 그의 말대로 "3일은 평생 겪어보지 못한 가장 무겁고 심각한 고뇌의 시간"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야당에게 쉴새없이 공격을 퍼부었던 여당 역시 "친일파" 타켓이 순간, 흔들린 시점에서 그가 고통스러워했던 3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 누구의 결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신기남은 향후 친일파 행적의 규명에 있어 장애가 되지 않도록 의장직을 물러났다.

신의원은 "보도를 접하기 전까지 20년전에 돌아가신 선친의 일제시대 행적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몰랐다"라고 성토하며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오직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고백했을 뿐, 그조차 "헌병인지 일반병인지, 지원병인지, 징병인지, 오장인지, 사병인지, 언제 어디서 근무했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가 정말 그 사실을 몰랐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신의원이 아무런 명분없이 사임을 한 것이라는 점이 그의 발언으로 인해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단지 大를 위해서 小로써 희생당했다는 인상을 받게 하는 발언을 통해 확연해진 것은 야당을 공격하기 위한 하나의 희생양으로 신기남이라는 카드를 버린 것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그는 사임을 발표하는 내내 초지일관 "아무것도 몰랐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책임회피성의 발언이며 무책임한 발언이라 질타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몰랐다"라는 말 뒤에 숨겨진 뜻에 대해 질타하고자 한다. "아무것도 몰랐다"라고 말한 것은 20년의 세월에 묻어둘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지금에 와서도 신의원은 "선친이 일제경찰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 당시 참을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알게 된 현재도 엄연한 의미에서 신의원은 선친의 친일파 행적에 대한 것을 부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고 있다. 즉, 그는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가지 못하고 "국민들을 위해 친일파 행적을 규명하라. 나의 슬픈 가족사를 딛고 당의 뜻을 이루도록 해라"라는 말 뒤에 숨어서 자신감없는 목소리로 당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떠밀려 얼떨결에 사람을 구한 우스갯소리처럼 신의원의 사임은 공을 위해 사를 버린 것처럼 포장되어 버렸다.

적군을 위해 아군 몇 명쯤 소모되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이 여당을 지휘하는 지도자의 생각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군의 최고 장수를 죽이기 위해 아군의 장군을 죽이는 것 역시 현명한 판단이었는지는 보류해 볼 일인 듯하다. 후련하다고 억지 고백하는 신기남의원의 말투에서 이미 열린우리당의 방패가 녹슬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신의원을 희생시켜 당장의 급한 불은 그 방패로 막았다 하여도, 친일파 행적 규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과제앞에 무릎꿇지 않을 정당의 장군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을 현정부앞에 던진다.


기사입력: 2004/08/19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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