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생
 
관리자

어느 가난한 과부는 아주 적은 돈이었지만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습니다(눅21:2-4).

아무리 적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 해 주님께 드릴 때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하는 창조목적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 소년은 상류층이 먹지도 않는 하품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를 주님께 온전히 드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는 창조목적에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놋 땅으로 이주해 거기서 아이도 낳고 성도 쌓았습니다(창4:16-17). 가정을 이루는 것도 대단한 일이고 성을 쌓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과 무관한 것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는 인생이라면 그 인생이 어떠하든지 위대한 인생입니다.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꿈을 가졌습니다. “나는 앞으로 호텔리어가 돼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불쌍한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겠다.” 그녀는 아버지한테 대학에 가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고 반대했습니다.

아버지는 술중독자였습니다. 날마다 술을 마시고 집안을 때려 부수고 어머니의 팔도 분질렀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대입 시험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한테 내일 시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녀를 때려 박살을 냈습니다. “왜 내 말을 안 듣고 고집부리는 거야. 대학에 가지 말라고 했잖아.”

시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재수를 결정했습니다. 호텔리어가 돼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불쌍한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해에도 아버지한테 맞아서 시험을 못 봤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술을 마셨고 마실 때마다 행패를 부려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싸움이 없는 날이면 오히려 가슴이 더 두근거렸습니다.

항상 가난했습니다. 여동생은 배고프지 않다며 자주 굶고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곳이라면 저 멀리 아프리카라도 가서 살고 싶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잘 하고 싶었지만 시험 전 날에 밤새 아버지한테 얻어맞다 보니 시험을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나쁜 성적표를 받아 쥐고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나도 시험을 잘 보고 싶은데. 나도 시험을 잘 보고 싶은데.’

삼수 때는 공부를 못해 대입 시험을 못 봤습니다. 사수 때는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어머니와 함께 쉼터로 도망을 갔습니다. 거기서 공부해 안양에서 있는 대림대학 호텔경영학과에 응시했습니다. 40명 모집에 400명이 응시했습니다.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추가로 합격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3달 동안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에 매달렸습니다. 머리 염색이나 퍼머는커녕 머리 빗질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300만 원을 벌었고 33만 원을 헌금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이를 악물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호텔리어가 돼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불쌍한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겠다.”

남을 도울 수 없을 만큼 힘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노인이라도 꿈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둘째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쓰임받는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인생은 위대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꿈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주님 안에서 꿈을 가져야 합니다. 백인이 있는 곳에서는 흑인이 식당이나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었고 흑인남성이 백인여성에게 악수를 요청할 시에는 강간죄가 성립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흑인 아버지 존 라이스는 딸 콘돌리자 라이스에게 백인을 미워하지 말고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과 실력으로 승부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 콘디가 햄버거는 못 만들어도 미국 대통령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콘디가 10세 때 백악관을 구경하면서 아버지한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피부색 때문인가요. 제가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그 후 25년 만에 35세의 흑인여성 콘디는 부시 행정부의 안보정책을 주무르는 국가안보 보좌관이 돼 백악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콘디는 공부할 때 남보다 2배로 열심히 했고 백인 학생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3배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주님 안에서 세운 꿈을 이루기 위해 그랬던 것입니다.

기사입력: 2004/10/27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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