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문화. 익명의 젊음
 
관리자


신 내셔날리즘의 도래로 익명성의 할거는 이리가 썩은 내장을 발견하고 달려들 듯 창궐일로에 있다. 국내 수천 사이트 속에서 오고 가는 인터즘의 내용은 정치에서 개인의 신상까지 열리고, 닫히는 일초 일각의 문화 모듈의 계기판이다. 익명성, 자신의 분명한 신분을 감추고 드러내는 숨겨진 인물의 정체를 말한다, 밝은 곳으로서의 진실을 내보이기 거부하는 배면의 안티즘이다.
우리 민족은 근대 외세의 침략에도 굳굳이 잘 견디어 왔다. 그 일제 36년의 속박, 침탈, 왕권주의의 유습과 구속 앞에서도 모든 질서와 온갖 설움을 잘 참아온 민족이다. 참으로 백의 민족의 근면과 정직함이요. 성실은 그 생존의 본체. 충과 효는 받듦과 섬김의 전통이었다. 그리고 민족 고유의 은근과 해학은 고단한 일상을 내재한 서민과 양민의 해방구였다. 민족의 한과 억압된 민중의 한을 노래했던 `아리랑’을 비롯 갖가지 `농요’와 `민요’가 춤과 더불어 고루 발전되었다. 해학의 미학은 황해도 은율 탈춤을 비롯 안동의 하회탈춤, 동래로 내려와 학춤으로 이르고 일찌기 삼국 시대의 가면무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설도 있다. 양반 세습제도의 철옹성을 넘지 못했던 서민들의 애환은 직설적이기 보다 운명적 삶속에서 저들만의 횃불 잔치였고 온건한 하층민의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는 하이테크 시대. 기억 속을 헤매는 전자파의 이데오로기 속에서 정신적 유희를 갈망하는 정보의 시대 , 소리 영상, 매체 문명의 잡동사니 혁명기다. 우리의 시대는 경제 전쟁에서 비롯된 전자 메카니즘의 경쟁으로 세계 시장의 점유 수위에 존재한다. 복제 과학의 총아로 선두를 지키고 핸드폰 그라피아는 세계를 누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고 어른들은 낯선 레게모니와 힙합피아의 혼돈과 갈등 속에 인터넷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후진 문명이 선진 문화의 침투로 모든 의식과 관습 등 고형제도가 변화되고 무너지는 과도기가 이때이다. 문명의 충돌로 빚어지는 정쟁속의 혁신과 수구의 조악, 국회는 설전의 바다로 출렁이고 국민의 혈세로 깐 카펫은 한 유도장을 연상케하듯 ‘밧다리 후리기’와 ‘뒷매어치기’로 후끈거리고 폭력 영화를 감상하듯 기왓장 같은 손지검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웃지 못할 제살뜯기 현장이다.
젊은이들의 충동적 헤게모니는 한편의 드라마로 재편되어 게임방과 오락실 문화로 꽉 차버렸다.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이어가는 변종의 바이러스가 우리 몸 속의 두뇌를 점령한다. 게임 중독 속에 빠져 뻑뻑 빨아 대는 궐련 속의 니코틴은 젊은이들의 정체성을 용해시킨다. 수일간의 연속된 집착과 집요의 환상일로에서 갑자기 찾아온 전자 공포증과 분열로 인하여 자살해버린 심각한 사회 병리의 단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익명으로 날리는 자유 게시판 위에 횡행하는 온갖 루머와 욕설 그리고 종교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사탄과 성자의 싸움, 그리고 미륵과 나찰의 대립으로 팽팽한... 삼류 소설을 보는 그릇되다 시피 한 어리석은 스토리를 자주 대한다.
세종대왕의 한글은 태풍에 서까래 날리듯 구름 위에 얹혀있고 알 수 없는 풍조어는 신조어 속으로 가라앉아 꿈속에서나 보는 황토빚 앙금으로 가라앉는다. 정말 이러다가는 지금의 악동들이 커서 국정 교과서 라도 고쳐야 될 일이다. 맞춤법이고, 문장이고는 아예 뒷전이니 일부라고는 하나 큰일이다. 사이트의 집시 족들은 폭주족처럼 네트웍을 장악하고 보이지 않는 해방구를 향해 거침없이 자신들의 배설물을 토해 놓는다. 기성이고 신인이건 상관없다. 비판의 급물살로 바위를 치는 쾌감을 느낀다. 실업과 혼돈 정치가 상존하는 불안 없는 방황의 시대 무작위로 쏘아 올리는 말, 말, 말의 공격성이다. 무의식의 절편에서 튀어 오르는 저들의 계산된 욕설과 비방은 탁류의 시대가 낳은 황사의 아들들이다. ××쨩, ××놈, ×쎄야 ! 보기에도 거북한 원석들이 용해되지 않고 쏟아진다.
우리 시대는 참으로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 높고 거룩한 마음을 후배에게 보여 주는 인자함이 없다. 하루 살기가 지천명이기 때문이다. 어르고 가르칠 시간도, 예법도 모른 채 강압만이 존재한다.
거기서 저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훈책은 소귀에 경을 읽는다. 삐따기의 시대에 삐닥한 아이들이 읽는 삐딱한 화면 속에서 보이는 것은 삐딱한 것뿐. 삐딱한 아이들은 온갖 크레파스로 삐딱이 이야기로 환 칠한다. 저들만의 언어로 ,익명으로, 그림자로 억눌린 이성의 카타르를 풀어내는 것이다.
정직이란 무엇인가? 겸손과 예의를 수반한 청정하고 깨끗한 성품을 이른다. 바르게 이어지는 사람의 길이다. 지금은 너도 나도의 가슴에 요구만 있을 뿐 행함이 없다. 쾌락과 물욕만이 팽배한 두 눈에 보이는 것은 부요와 탐욕, 선지자와 선견자가 없고 대인의 기품이 서늘한 이끼와도 같은 대사성(大師聖)이 없다. 그러니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 등경에 켜
기사입력: 2004/03/11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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