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붉은 상처
 
정성수 시인

그 때, 우리는
사랑한 게 아니었습니다.
잠시 쓸쓸한 등을 서로 기댔을 뿐
서로 다른 하늘에서
제각기 빛나던 별이였습니다.
그 별들, 이 땅에 내려 와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목련의 봄날을 보면서
사랑 보다 먼저
이별이 캄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잊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숨을 거두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당신과의 짧은 만남이
들풀처럼 돋아나도
끝내 눈물조차 보이지 않겠습니다.
한 순간의 만남이
꽃보다 붉은 상처가 될 줄을
그 때는 몰랐습니다.

***시작노트 : 고까짓껏! 고까짓껏! 하며 소매끝으로 눈물을 닦습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눈을 흘겨 봅니다. 그러면 잊어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왜? 강물은 여전히 흐르는가요? 꽃은 피어 향기가 온 세상에 진동하는가요? 지금은 눈을 감습니다.




기사입력: 2004/04/27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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