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
 
정성수 시인

당신이 내게 하신
나를 잊어달라는 말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잊으라면 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잊어달라는 말 뒤에는
잊지 말아 달라는 슬픈 애원哀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세상의 하고많은 말 중에서
당신을 잊어달라는 그 한 마디는
내가 당신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하신 말이라는 것을.

세상의 어느 칼날보다도 더 두려운
그 말이
뽑아낼 수 없는 못이 되어
가슴에 박힌 체
바람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잊어달라는 당신의 말에 문득
세상의 길이 다 닫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가야 할 길을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캄캄한 일이더이다.
내가 당신을 잊으려면 아무래도
많은 시간 속을 헤매야겠지요.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당신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작노트 : 오늘은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내 마음이 그대를 향해 절절하다고. 잊어달라는 답장이라도 오면 어떻하나 괜한 걱정을 한면서. 아직도 내 사랑이 하늘에 닿치를 못해 그리운 사람의 가슴이 열리지 않는지? 마음의 문을 똑똑똑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다. 그리움의 검지손가락을 접어서 ------



기사입력: 2004/05/01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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