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고려장
 
정성수 시인

-어버이 날에 부쳐-

하느님에게 똥침을 놓으려면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아파트 이십층 꼭대기에 나를 올려놓았다.
일주일에 한 번 파출부가 와서는
내 살가죽을 홀랑 벗겨 세탁기에 돌돌 돌리며
팥죽냄새가 난다고 오만상을 찡그리고
잊어버릴만하면 며느리 년이 쥐 잡아 먹은
화상을 코앞에 흔들어대다가
냉장고 아가리가 터질 때까지
온갖 잡동사니를 꽉꽉 채우고 간다.
어쩌다가 전화통이 체면치레를 해야 한다고
두꺼운 얼굴을 들이대며
예금통장은 잘 있느냐고 안부를 물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경기(驚起)를 한다.
무시 캐다 들킨 놈처럼 머쓱해져
베란다 커튼 사이로 세상을 빼꼼히 내다보면
세상이 안부를 묻는다. 아직 성성하냐고.
땀냄새 감질(疳疾)나게 묻어오는 이 곳은
현관문 밑구멍으로 아침마다 유모가
젖 한 통씩 물려주고 가고
그 젖통을 빨다가 똥침놀이도 시들해 지면
"야, 이 놈들아, 느덜도 금방 이여!" 소리쳐대도
저 아랫동네 사는 놈들은 귀머거리들 뿐이다.

***시작노트 : 우리는 어버이 날이 되면 유난스럽게 엎드려 땅에 이마를 댄다. 늙은 어머니를 고려장 시키기 위해서 지게에 지고 산속을 갈때 솔잎을 뜯어 돌아갈 아들을 위하여 길 표시를 하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고려장 시키고 산을 내려 올때 할아버지를 지고가던 지게를 버리는 것을 보고 손자가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고려장 시킬 때 필요하니 그 지게를 가지고 가자는 말에 아차 싶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식들은 언제 효도 한번 제대로 했던가. 생각해 보니 얼굴을 들 수가 없구나. 두고 보라, 누구인들 고려장이 안된다고 장담할 자 있는가. 아파트가 따뜻한 곳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밥만 많이 먹는다고 배가 부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기사입력: 2004/05/06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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