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 가다
 
정성수 시인


결국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끝나지 않은 길 위에 주저앉는 일이었다.
자갈밭에서 땅을 파 뒤엎고
작은 수확을 거둬 야윈 어깨에 짊어진 체
생의 골목을 돌아올 때
길은 좁았다.
귀가하는 어둠이 두려운지
검은 개가 목소리를 낮춰 내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걸어 온 길이 환했느냐고
해줄 말을 찾았으나
돌멩이 몇 개 하찮은 듯
길 위에 뒹굴고 있었다. 다만
걸어왔고 고단한 발걸음 이였다고
바람이 나를 대신하여
쭈삣쭈삣 말하고 있었다.
때로는 길가에 주저앉은 풀꽃들이
석양을 보며 쓸쓸해하듯이
어쩔 수 없이 나 또한
하루를 닫고 커튼을 내려
몸을 무거히 눕히고 걸어온 날들을 향해
깊고 깊은 잠을 청한다.


***시작노트 : 거울 속의 저 늙은이는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다. 어디서 봤더라. 아. 꿈속이였어. 저 늙은이를 만난 것은. 거울 속의 늙은이가 말하네. 어이하랴, 가는 세월을, 누가 붙잡으랴. 흐르는 강물을--곧 겨울이 오리라. 베옷 한 벌을 준비하자. 흰눈이 내리기 전에.



기사입력: 2004/05/08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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