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야, 배가 고프다
 
관리자



1)
아우의 등은 넓어 풀 짐이 높습니다. 산 보다 더 높은 풀 짐을 지고 해저믄 초여름 논두렁을 넘어질 듯 쓰러질 듯 길 더듬어 푸른 탱자가 탱글탱글한 고샅길을 까맣게 지나옵니다. 지난 가을 김장 무를 씻듯 누런 세숫대야에 두 발을 뿌득뿌득 씻고 삼베 수건으로 물기를 쓱 문지르면 풀벌레 울음소리 앞마당에 가득합니다. 토방을 올라 선 마루 끝 저녁상엔 보리밥 한 볼탱이가 입속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도 뱃속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무논에서 깜깜하게 미끄러져 울던 허기진 개구리들입니다. 저녁상을 마주 한 아우의 등은 허전해 보이고 숟가락을 건네주는 형이 알고 있는 한 마디는 아우야, 배가 고프다. 어서 저녁 먹자.

2)
아우의 마음은 넓어 생각이 깊습니다. 뒤안 대밭의 댓잎들이 밤바람에 잠못 이루며 서걱이고 어둠을 이마까지 끌어당긴 비둘기들이 도란도란 도란거리면 부엉이가 앞산 뒷산에 돌아 와 가을아 가지마 가지마 눈물로 매달려도 아우의 책 읽는 소리에 마루 밑 강아지 워리는 꿈길 같은 책속을 밤을 세워 걸어갑니다. 울타리 넘어 채전밭의 김장배추가 밤새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뒷산자락 상수리나무에서는 상수리들이 다람쥐들에게 하얗게 하얗게 시달려도 아우는 돌부처가 되어 밤새 창호지 문에 등불 하나 걸어 둡니다. 앞마당에 뿌연 새벽이 밀려오고 동창이 열린지가 한 참인데 아직도 아우는 책 속에 묻혀있고 허청에서 눈 비비고 일어 난 풀지게가 날다 샜당게 날 샜어 부르는 소리에도 귀먹어 캄캄한 한 밤중입니다. 아우의 마음은 더 넓어지고 밤새 길어 올린 깊은 생각에 숟가락을 건네주며 형이 생각해 낸 한 마디는 아우야, 배가 고프다. 빨리 아침 먹자.


기사입력: 2005/01/14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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