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스승
 
정성수 시인



1)
전북대학교 앞, 지하도에는
늙수그레한 남자 맹인이 계단에 자리를 잡고
마이크를 들고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노래를 듣고 있던 나는
하루에 노래를 몇 번이나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두 눈을 깜박 깜박거리며 불만스런 말투로
그렇게 묻지 말고
하루에 몇 곡이나 부르느냐고 물어라 한다.
이래봬도 레퍼토리가 엄청나게 많다면서

순간 생각했다.
내 인생의 레퍼토리는 몇 개나 되는지.
내 십팔번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타고 오면서.

2)
또 그 맹인 앞에 똥싸는 폼을 잡고 앉았다.
오늘은 수입이 좋으냐고 물으면서.
플라스틱 돈 바구니를 슬쩍 넘겨다봤다.
백원짜리 동전이 한 움큼 있었다. 그 속에
천원짜리 지폐도 몇 장 보였다.
나도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바구니에 던져 주었다.
천원짜리군요 씩 웃으면서 하는 맹인의 말에 깜짝 놀라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물었다.
이 장사를 어디 한 두 번 하느냐며
지폐는 떨어질 때 소리가 않나지 않느냐고
내장사 부처님처럼
손가락으로 동전모양을 만들어 보인다.

순간 부끄러웠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듣고 살았는지. 혹시
내 귀는 하나 뿐인지 귀를 만지면서.



기사입력: 2005/02/08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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