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정성수 시인


부부가 덕진연못으로 산책을 나갔다.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연지목교蓮池木橋를 건너가는데
왼손으로 여자의 어깨를 꽉 끼고
오른 손으로는 우산을 추켜잡은 남자와
반쯤 남자의 가슴속으로 들어간 여자가
우산 속에 작은 둥지 하나 튼 체
곁을 스쳐간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언제 저런 때가 있었던가
생각하고 있는 순간 아내는
남편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옆구리를 교태롭게 꾹 찌르면서
생각나느냐고 물었다.
전혀 기억이 없다. 남편은
아내가 뭘 묻는지 감조차 못 잡는다. 그러나, 아내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남편의 무명지 손가락에서는
노랗던 가락지가 누렇게 변해 가고 있었고
아내는 빗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기사입력: 2005/03/19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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