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삽
 
시인 정성수



날이 닳아, 끝마져 휘다가 지쳐
붉은 녹이 가마솥 깜밥처럼 일어 난 이 삽은
때로는 논두렁에 엎드려 아버지의 손이 되었고 때로는
밭고랑에 선 체로 아버지의 발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뼈를 휘이게 한 노고의 이 삽은
아버지의 자랑스런 연장이자 자식들의 호구를 걱정하던
하늘의 미소로운 존재였습니다.

쉽고 빠른 세상의 길을 버리고
고되지만 아름다운 땅을 한없이 뒤적이는 수고가
샘물을 솟게 한다는 가난한 말들을 알게 하는
아버지의 분신인 이 삽은
당신의 영혼을 자식들에게 퍼 먹이던 수저였습니다.



기사입력: 2005/03/21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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