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정성수 시인



봄동산에 개나리 진달래가 너 먼저냐 나 먼저냐
노랗게 피었다가 빨간듯이 지고
빨갛게 피었다가 노란듯이 지고
호랑나비 한 마리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왼종일 까질러 다니다가 꽃 속에서 잠들어도
그 여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골목길에 어둠이 질척질척 초여름비를 따라 내리고
길가로 난 그 여자의 창문에 불빛이 새어 나오면
빗소리에 맞춰 휘파람을 나지막이 불면서
일부러 우산살로 창문을 스치고 지나가도
그 여자는 시비 한 번 걸어오지 않습니다.

내장산 단풍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사람들이 꽃이 되어 온 산을 덮어도
그 여자는 바윗덩어리처럼 꼼짝조차 하지 않습니다.

풀벌레 울음소리 밤새 그 여자의 집을 에워싸고
캄캄하게 울어대도 창문 한 번 열어보지 않는 그 여자를
나는 절대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기사입력: 2005/03/24 [00:0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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