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피살과 조봉암 사형
 
최훈영 기자

이승만이 대통령이 된 시절, 1949년 6월 26일에 이승만의 정적 김구(金九)가 피살되었습니다. 향년 74세 육군소위 안두희(安斗熙)가 총을 쏜것입니다. 20대 청년 안(安)이 김 구를 죽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승만이 정적 김 구를 죽인 것이라는 말이 공론으로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김 구 장사를 국장으로 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당시 사람들이 <병주고 약주는 교활>이라고 했습니다. 김 구 아들 김 신도 여연구 처럼 무슨 말을 하기를 바랍니다. 사료가 되기에 그러합니다.
 
1958년 1월에 대통령 이승만은 진보당 위원장 조봉암(曺奉岩)을 채포했습니다. 조봉암은 사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향년62세 조봉암은 1952년에 제2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고. 56년에 제3대 대통령후보에 다시 출마했으나. 떨어졌습니다. 이승만은 조봉암을 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승만은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은 입을 다물면 재미를 보게 됩니다. 이승만이 지은 글 한 장이없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꺽꺽거리는 소리만이 전하여 만담가 들이 흉내 내고있습니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이 아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승만이 스스로 우남(雩南)이라고 호를 지었으나, 불러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적을 죽인 사람 살륙폭군자 폐주자가 호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름이 바르게 서야 모든 일이 따라서 바르게섭니다. 정치는 이름을 바르게 세우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爲政ㅇ先> 물음에 공자가 이르기를 <必也, 正名乎인저>라고 했습니다. 정치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이름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을 바로세우는일> 그것을 <正名>이라고 합니다. 공자학을 正名學이라고 합니다. 정치가는 <正名>을 챙겨야 성공하게 됩니다. 이승만이 잘하는것이 하나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승만이 8월15일을 <광복절>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잘한 일 이었습니다. 이승만이 99가지를 잘못했는데. 광복절이라고 이름을 정한 것 그 하나가 잘한일이 었습니다. 이것은 잘한것 이상으로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할것이 하나있습니다.
 
<광복절>이라는 이름이 이승만이 지은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승만 실력으로는 <광복>뜻을 알지 못할것입니다.

나는 여기에서 늘 의심해온 것이 있었습니다. 이승만이 <광복>뜻을 아는사람으로 검증 되지 아니했습니다. 이승만은 지은 글이 없습니다.
 
애국가를 지을 초대 대통령에 있었지 만은 지은이도 옛날 노래를 애국가로 정했습니다. <동해물이 마르고>라는 불길한 노래를 부를 바에는 차라리 <아리랑 노래>를 애국가로 정하는 것이 더 좋았을번 했습니다. <동해물 노래>가 이승만 마음에 들었던 것은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말 때문 이었으리라 믿습니다. 이승만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배달겨레 문화사)  
기사입력: 2005/03/29 [07:0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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