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신탁제도 졸속통과 우려
반쪽짜리 개정안, 그나마 내용도 부실
 
김슬기 기자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지난 21일, 주식백지신탁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자윤리법중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은 이해충돌을 규제하기 위해 주식 백지신탁제도를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최근에 문제가 된 부동산을 통한 재산증식의 규제 방안과 공개제도 강화 및 재산형성과정의 소명,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강화 등의 내용이 빠져 있어 반쪽짜리 개정안에 머물고 말았다.

또한 통과된 백지신탁제도 역시 애초의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그 대상자와 대상 주식을 크게 축소하고, 고지거부권을 부여한 것은 제도 도입에만 초점을 맞춘 졸속 개정안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번에 행자위를 통과한 백지신탁제도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점투성이이다. 우선 백지신탁 대상이 되는 주식을 직무관련성이 있는 주식으로 한정한 부분이다.

국회의원과 장차관 및 1급 이상 공직자와 경제부처 공직자는 그 직무의 범위가 매우 포괄적이어서 주식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모든 주식이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보아야 하고, 따라서 보유한 모든 주식을 백지신탁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그 주식에 관한 직․간접적 정보의 접근과 영향력 행사의 가능성을 직무관련성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 역시 그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직무관련성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또한 백지신탁 대상자의 범위를 1급 이상 재산공개대상자로 결정한 부분 역시 문제이다.

그나마 금융감독원과 재경부의 주식관련 업무 종사자에 대해서는 확대적용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주식보유로 인한 이해충돌은 직급의 고하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연관성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모든 공직자가 보유한 직무관련 주식이 백지신탁대상이 되어야 하며 최소한 재산등록대상자인 4급 이상 공직자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대상자를 이렇게 축소한 것은 도입 초기 저항을 줄이는 데에만 급급한 것으로 주식보유로 인한 이해충돌을 규제한다는 백지신탁제도의 도입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결정이다.

백지신탁 하한액을 1천만원~5천만원 이하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한 것도 고쳐져야 할 대목이다.

대통령령에 과도하게 그 범위를 위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액수(3천만원) 역시 너무 높다. 백지신탁 하한액은 이해충돌을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액수에서 결정되어야 하고 그 적정한 수준은 1천만원 이하이다.

또한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이 보유한 주식까지 백지신탁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독립생계를 유지하는 직계존비속에게 고지거부권을 부여하여 예외를 인정한 부분 역시 개정안의 문제점이다.

그동안 공직자재산등록 과정에서 고지거부권은 공직자들의 재산도피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들이 부지기수이다. 지난 1월 부동산 의혹 등으로 사퇴한 이기준 교육부총리는 자신의 장남의 재산을 고지거부 하였고, 최근 위장전입이 드러난 홍석현 주미대사의 역시 고지거부권을 활용하여 노모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폐지가 주장되어온 고지거부권을 또 다시 백지신탁제도에 도입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백지신탁제도 도입에 관한 공직자윤리법 개정 논의는 법안이 제출된 지난해 9월 이후 지지부진하다가 최근 고위공직자들의 부동산 관련 낙마가 이어지자 공직윤리의 확보를 위해 자연스레 제도개선이 요구되었고 그 결과 이미 제출된 백지신탁제도 도입과 관련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행자위를 통과한 것이다.

그러나 공직자윤리법의 조기 통과에만 연연하여 백지신탁제도의 도입취지를 망각하고 졸속적인 법률안을 통과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이번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서 빠진 공직자의 부동산을 통한 재산 증식을 규제하는 방안과 재산공개제도를 강화하는 방안, 재산 신고시 재산형성 과정을 소명하도록 하는 방안,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을 강화하는 것 역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하여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사입력: 2005/04/23 [01:1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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