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
 
최훈영 기자
 조선학(朝鮮學)

<호랑이 꾸짖기>를 호질<虎叱>이라는 이름으로 박지원이 지어 놓고는 두려움을 느꼈던 탓으로 자기 작품이 아닌 것 처럼 슬금슬금 피하기도 하고, 피하고 싶지도 아니한 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나이 44 때 내가 중국 옥전현(玉田賢에 이르던 날 저녁에 중구갓람 심유붕(沈由朋)이라는 사람 점포에 들렀더니 한 편의 기괴한 글이 벽에 걸리어 있음을 보고, 내가 그 글을 베껴 온 것입니다.

각설, 광복후 소설가 리문렬(李文烈)이 중국소설 삼국지(三國志)를 지어서 신문광고에 크게 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교에게 설문지를 내었더니, 리문렬 <삼국지>가 1위를 했다고 신문광고에 났습니다. 원인 라관중(元人 羅貫中)이 지은 <三國志>를 읽으면 중국이 부러워져서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게 됩니다.

조선 나라 조선사람이 중국을 부러워하면서 조선 나라를 업신여기게 된 그 첫째가 은나라 사람 기자가 조선에 와서 임금을 했다는 그 거짓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중국 고서에 없는 말을 고려 요승 일연이 허위 날조했습니다. 조선국 선조시대 리 이 라는 허위 날조글을 지었습니다.

그 뒤 숙종시대 허 목(許穆)이  허위 날조글을 지었습니다. 그 둘째가 주희설(朱熹說)이 들어와서 자기 나라를 잊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셋째가 선조 시대에 라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이 들어와서 자기 나라인 조선을 업신여기게 된 것입니다.

리문렬은 박지원이 지은 <호랑이 꾸짖기>같은 소설을 지어서 열품을 일으켰다고 하면, 조선학을 일으키게 되었을 것인데, 그 재주가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조선학이 없으면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쓸모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2004년에는 리문렬이 초한지(楚漢志)라는 중국소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2004년 2월 신문광고에 <황석영 삼국지>가 10권 나왔다고 합니다.

나라에 비평이 없다가 보니, 나라가 이렇게 썩게 되는 것입니다.광복 후 문민시대 코리안 대학생들이 신문광고를 보고 중국소설 <삼국지>를 즐겨 읽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은 대학입학 수능시험에 <삼국지>가 유익하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중국소설<삼국지>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초등학생은 장래 치를 수능시험을 미리 대비하라고 <만화 삼국지>를 읽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코리안 배달겨레는 <고구려 역사>를 차이니스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정종대왕이 박지원 지음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읽고, 내용에 대하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아니했습니다. 대왕 다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정종대왕이 주희학도(朱熹學徒)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정종대왕이 걱정한 것은 박지원의 문체였습니다. 문체가 맑지 아니하고 바르지 아니함을 꾸짖었을 뿐, 그 내용에대한 꾸짖음은 없었습니다. 정종대왕이 경연에서 이르기를 <요지음 문풍이 이토록 되어버린 근본을 따지면 박지원이 지은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하일기>를 내가 읽어 보았더니 어찌 감히 그렇지 않다고 숨기면서 속일수 있으랴. 이 열하일기가 문풍을 바로잡는 일에서 여지껏 그물에서 놓쳤던 큰고기 몫이었습니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나와서 읽혀진 뒤로 부터 문체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마땅히 맺은 이로 하여금 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뜻은 박지원에게 전하여 맑고 바른 글 한편을 지어서 올려라>


박지원이 안의(安義) 현감으로 있을 때 과농소초(課農少抄)라는 글을 올려 속죄했습니다.

문체에 대한 박지원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한나라 당나라가 오늘의 세상이 아니고,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이 다시 태어난나고 하면 그들은 결코 반고와 사마천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박지원은 또 열하일기 옥갑야화(玉匣夜話)속에 허생(許生)이라는 소설을 끼워 넣고서 윤 영(尹映)이라는 사람으로 부터 들었다고 했습니다. <허생전>이라는 소설은 <호질> 급에 이르지 못하나, 그 다음에 이릅니다. <허생전>은 2부작으로 되어 있습니다. 1부는 허생이 <도거리장사>를 시험하는 실험 소설이고, 2부는 효종시대 실제인물 이완(李浣) 대장 목을 치려고 뛰어 들었습니다. 이 완은 달아났습니다. 이것이 소설의 끝입니다.

효종임금이 청국을 쳐들어 가겠다는 계략을 세웠습니다. 이것을 북벌책이라고 했습니다. 효종의 북벌책을 찬성하는 신하가 송시렬이었고, 그 일에 선발된 무관이 이완이었습니다. 허생이 송시렬 목을 치려고 하지 아니하고, 이완 목으로 바꾸었습니다. 박지원이 노론당(老論黨)입니다. 당수가 송시렬입니다. 당수 목을 칠 수 없고, 하수인 이완 목을 치려고 방에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박지원은 효종의 북벌책을 젖먹이 작란으로 본것입니다.

박지원은 이름이 노론당이었을 뿐, 당을 초월한 대인군자였습니다. 등장도니 실제 인물이 이완(李浣), 이귀(李貴), 김류(金유), 장유(張維)였습니다. 이귀, 김유, 장유, 등은 실제 인물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광해군을 쫓아낸 공신들어있습니다. 장유를 북벌파에 넣은 것은 박지원이 오판한 것이었습니다.

정종대왕(正宗大王)이 24년 동안 임금 자리에 있었씁니다. 나이 49가 되던 경신년 6월에 갑자기 승하했습니다. 노론당이 독살시켰다는 비화가 있습니다. 아깝다고 하는 울음이 하늘을 덮었다고 합니다. 오래 살았다고 하면, 나라를 빼앗기지 아니할 굳센 터전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훗날 장김(壯金)이 세도(勢道)를 부리는 시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라를 왜족(倭族)에게 빼앗겨서 겨레가 실국(失國)하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배달겨례문화사)



기사입력: 2005/04/28 [07:4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조선] 조선학 최훈영 기자 2005/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