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도령이 임금으로
 
최훈영 기자

헌종 15년6월에 헌종임금이 승하 했습니다. 헌종이 아들이 없이 승하 했습니다.헌종 아들 감으로 왕위가 이어져 가야하는데 조대비가 옥새를 지니지 못했습니다.헌종 계비 홍씨가 옥새를 지니게 되었습니다.장김이 꾀를 부렸습니다<헌종 후사가 끊어졌다,다시 위로 올라가서 순종의 아들이 되는 쪽으로 임금을 구하자>로 된 것입니다.궁중에서는 큰 안어른이 조대비이나,장김 세력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강화도에서 순어 살던 은언군(恩彦君)의 손 이원범(李元範)을 장김이 구한 것입니다. 강화도에서 고기를 잡던 19세 소년 어부가 임금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강화도령이 임금으로 되었다는 말이 민요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조선나라에서 처음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상식 밖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글자를 배운바가 없는 사람이 임금이 되기로는 강화 도령이 처음 이었습니다. 폭군 연산군이 시를 지을 줄 알았으니 글자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강화도령이 사도세자의 증손입니다. 이 임금이 14년동안 나라를 다스렸급니다. 승하후 묘호가 철종(哲宗)으로 되었습니다. 철조(哲祖)로 되어야 하는데 왕자처럼 묘호를 종(宗)으로 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강화도령이라고 빈정거리기에 왕자처럼

만들기 위함으로 느껴집니다.<宣祖>가 대궐 밖에서 자랐고<仁祖>가 대궐 밖에서 자랐습니다. 강화도에서 자란 임금 묘호가 (哲祖)로 되었어야 했습니다. 묘호<철종>은 묘호 규칙을 엄청나게 위반한 것입니다.<純宗>을 <純祖>로 바꾸었으니 <哲祖>로 될 자리를 <哲宗>으로 또 바꾼 것입니다.
 
각설, 헌종의 아들로 구해야 하는데, 헌종의 아들로 구하면 조대비가 힘을 쓰게 될 것이어서 장김이 순종(純宗)의 아들 감으로 위후(爲後)시켜서 임금 자리에 오르도록 하자로 합의 되었습니다. 강화도령이 그 자리에 맞게 된 것입니다. 글자를 모르는 이원범을 임금으로 구한 것입니다. 망할 세상으로 한 발씩 다가서는 것이었습니다.
 
철종 8년 8월에 장김세력이 아주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하니, 23년 전에 정한 묘호 <純宗>을 <純祖>로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선대 묘호 <英宗>을 <英祖>로 바꾸었고, <正宗>을 <正組>로 바꾸었습니다. 묘호 바꾸기를 하게 된 까닭을 밝히지 아니했습니다. 원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철종 12년에 실세 김좌근(金左根)이 영의정이 되었습니다. 13년 2월 진주(晉州)민란이 일어나자, 4월에 익산(益山), 개령(開寧), 함평으로 민란이 번져갔습니다. 5월에 충청도,전라도, 경상도, 곳곳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역성혁명이 되어서 다른 성이 임금이 될 때가 온것입니다. 민심이 그런 쪽으로 흐르자, 8월에 왕족 이하전을 죽였습니다. 10월에는 제주도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북쪽 함흥에서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듬해 14년 강화도령 그 임금이 벌벌 떠는 왕으로 지내다가 33세로 승하했습니다.
 
민란이 전국으로 번져 나가자, 왕족 이하전을 죽였고, 역성혁명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순종임금이 큰인물이었다고 만들기 위하여 궁리하던 끝에 뚱단지 같은 무리 수를 던지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순종(宗)을 순조(祖)로 바꾸는 망할 짓을 한것입니다.
 
순종(純宗)임금 만 높여 주면 역성 혁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순종이라는 묘호를 순조로 높이자고 글을 올린 사람이 지돈령 이학수였습니다. 이때가 철종 8년(1857) 8월이었습니다(철종실록 : 쪽 615). 엄청나게 긴 글이었습니다. 속임수가 들어가면 글이 길게 됩니다. 점쟁이가 말하는 액운 막기 같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장김이 하는 일이어서 반대하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입을 다물고 살아야 목숨을 보존하는 무서운 세상으로 된 것입니다.(배달겨레 문화사) 
기사입력: 2005/05/04 [09:32]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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