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와 불륜 폭로…공익 목적이면 정당
염원섭 판사 “공공이익 위한 것이면 위법성 없다”
 
신종철 기자
다른 교수가 가르치던 여제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등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대학 내에 배포했더라도 부적절한 교수의 사직과 대학당국의 대책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염원섭 판사는 여제자와 부적절한 관계가 들통나 사직한 사립대 음대 교수 A(42)씨가 자신의 사생활을 폭로한 같은 대학 교수 장OO(55)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04가단159055)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법원에 따르면 원고는 92년 경기도에 있는 K대학교 음대 작곡과 전임강사로 임용됐다가 부교수로 재직하던 중 2004년 4월 사직했으며, 피고는 96년 같은 과 전임강사로 임용돼 현재 부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피고는 이 대학에서 90년부터 시간강사로 근무하던 중 자신의 아내이자 같은 과 조교수인 김OO씨와 함께 94년 12월 졸업반 모임을 하던 자리에서 A교수와 졸업반 학생인 B(22,여)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며칠이 지난 뒤 학생들은 김 교수를 찾아와 “A교수의 처는 미국 유학 중인데 A교수가 B의 오피스텔에 수시로 드나들고, 같이 잠을 잔 것뿐만 아니라 약혼 반지까지 교환했으며, A교수가 B의 수업에도 특혜를 준다”는 내용을 얘기하면서 공식적으로 대학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청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피고와 김 교수는 작곡과 교수 2명과 함께 원고에게 소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원고는 “B를 이성으로 대하거나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 교수들 사이에서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원고는 96학년도에 휴직했다.
 
이후 원고는 97학년도에 대학에 복직한 후 강의를 계속했는데 2002년 대학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B와 관련한 원고의 사생활을 거론하면서 원고가 교수로서 자질이 없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피고나 대학의 다른 교수들은 게시 글을 읽고 원고의 처신에 대해 논의했으나, 당시 해외연수 휴직 중이던 원고가 게시 글과 관련해 학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학장의 만류로 철회하고 휴직계를 제출해 공식적으로 원고에 대한 징계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원고는 2002년 2월 처와 이혼한 후 2003년 5월 제자였던 B와 결혼했다. 그리고 원고는 2004년도에 복직할 예정이고, 1학기 강의를 배정 받은 사실이 학교에 퍼졌다.
 
원고가 복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피고는 B와 관련된 소문을 확인한 후 2004년 3월2일 ‘A교수는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A교수가 제자와의 이성관계로 배우자와 이혼한 다음 세 번째 결혼을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학교에 돌아오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 3,000장을 배포하며 A교수와 대학측에게 학교를 그만 둘 것을 촉구했다.
 
A교수가 2004학년도 1학기에 강의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음대 작곡과 학생들도 “A교수 담당과목의 수업을 거부한다”며 대학 교무처장에게 윤리적이고 올바른 교수로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하며 파문이 확산됐다.
 
피고는 A교수와 대학측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A교수는 음대 작곡과 OOO 교수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어느 날 학생이 찾아와서 A교수가 B에게 이혼할 테니 결혼하자고 했고, 둘은 이미 선을 넘었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모임에서 만취해 사라진 A교수가 또 다른 제자 C와 함께 차안에서 누워 있던 것을 목격했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있습니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2,000장 배포했다.
 
또한 음대 작곡과 학생 12명은 2004년 3월12일 A교수가 제자인 C와 불 꺼진 연구실에서 나오는 것을 수 차례 목격했고, C가 지각이 잦았음에도 A학점을 받았다는 등의 내용으로 A교수의 사직을 권고하는 서명을 하고, 사직을 촉구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나아가 작곡과 학년 대표들은 4월27일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A교수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서’를 작성해 대학총장과 학교법인 이사장에게 보냈고, 작곡과를 졸업한 동문들도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글을 대학 총장에게 보내는 등 파문은 더욱 커져갔다.
 
한편 학교법인이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징계를 내리려 하자 A교수는 징계의결 전날인 4월26일 사직한 뒤 피고를 상대로 “사실의 진위 확인 없이 학생들을 동원해 유인물을 배포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것.
 
이와 관련,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먼저 “피고가 각 유인물에 기재한 내용은 객관적으로 보아 원고의 외부적·사회적 평판을 저하할 만한 사실이므로 이를 적시한 행위는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학교법인의 특별감사 결과 유인물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고, 원고가 중징계 의결 하루 전에 사표를 제출한 점 등 유인물의 배포 경위와 목적, 유인물의 내용 등에 비춰 보면, 피고가 유인물을 배포한 것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학업의 성취도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신성한 대학에서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한 원고의 사직과 대학의 대책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유인물 배포행위는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로이슈]
기사입력: 2006/11/13 [10:54]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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