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바꿔놓은 현대 유니콘스 10년사
 
고동현기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변한 것은 비단 강산만이 아니었다. 한 때 프로야구계에서 삼성과 돈으로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팀이었던 현대는 프로야구판에 뛰어든지 10년이 지난 2007년 현재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1월 14일자 <일간스포츠> 인터넷판에는 현대, 연고지 해결보다 자금난이 더 급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자는 기사에서 사실상 모기업이 없는 현대 유니콘스는 그간 야구에 애정이 큰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전 대한야구협회장)이 앞장서 과거 현대 계열사들의 도움을 얻어 운영돼왔다. 하지만 1년 운영금(약 200억원)의 절반 가까이를 지원했던 현대기아차그룹이 올해부터 자금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는 연이어 터진 악재 때문. 지난해 정몽구 그룹 회장이 개인적인 곤욕을 치른데다 최근 환율 하락·노조 파업으로 손실을 겪으면서 유니콘스에 대한 지원금을 끊는다는 시나리오다. 정몽구 회장은 기아 타이거즈 야구단 한 팀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우승의 영광은 뒤로 하고 연고지, 구단 자금난으로 이중고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첫 경기. 1996년 4월 13일 인천구장 앞의 모습이다.     © 현대 유니콘스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1996년부터 프로야구에 뛰어든 현대는 11번의 시즌 중 무려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기록상으로는 명문팀 반열에 올랐다. 이는 10년간 프로야구팀 중 가장 많은 우승이며 전체적으로 살펴봐도 한국시리즈에서 9번 우승한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하지만 현대는 4번의 우승을 얻은 대신 연고지와 많은 팬을 잃었다. 현대는 수원구장을 사용한 2000년 이후 거의 매해 관중동원에서 맨 밑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보자. 지난해 작고한 이종남 대기자(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의 마지막 저서인 <종횡무진 인천야구>를 바탕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10년사를 되돌아본다.
 
현대그룹이 본격적으로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2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였다. 그룹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정 명예회장이 적극적인 스포츠 참여 의지를 밝혀 1사1팀 정책을 펼친 데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야구계는 어서 오십시오 하는 분위기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중략) 때문에 9구단 창단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현대는 우회작전을 폈다. 첫째는 기존 구단을 사들이는 백도어 진입. 1997년에 벌어질 무주 유니버시아드에 대비해 자금 조달이 급했던 쌍방울그룹과 교섭을 벌인 결과 400억원 선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그러나 쌍방울은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2개동을 지어줄 것을 추가로 요구했다. 현대는 손을 데고 말았다.
 
현대가 펼친 제2의 우회작전은 아마야구계 점령이었다. 결국 현대는 아마야구 회장직을 맡는 데 성공했다. (중략) 그리고 프로 진입에 제동이 걸려 심기가 불편하던 현대는 제2리그 창설이라는 색다른 구상을 했다. 현대가 주축이 되어 다른 대기업들에 프로야구단을 창단케 한 다음 KBO와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프로리그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내셔널리그에 대항하는 아메리칸리그가 있듯이. 이런 구상 아래 현대건설에서 김정호 이사와 김용휘 부장(현 현대 유니콘스 사장)주도 아래 1994년 11월 28일 창단한 것이 실업야구팀 현대 피닉스였다.
 
이종남 기자는 <종횡무진 인천야구>에 위와 같이 저술하고 있다. 이후 현대는 당시 유망주였던 문동환, 조경환, 문희성 등을 영입해 현대 피닉스를 창단했다. 뒤에 일어난 일이지만 임선동은 7억원에, 박재홍은 4억 3천만원에 계약했다. 하지만 현대는 1995년 8월말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면서 인천에 프랜차이즈를 차리게 되자 제2리그 창설이라는 말은 쏙 들어가 버렸다.
  
이어 이종남 기자는 <종횡무진 인천야구>에 박재홍은 그의 연고팀인 해태가 이미 1차지명한 선수였고, 해태는 박재홍을 데려오려면 4억3천만원 이상의 계약금을 건네줘야 하지만 그만한 재력이 없었다. 해태는 울며 겨자먹기로 현대(프로팀)로부터 최상덕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박재홍의 지명권을 현대에 양도했다.(중략) 이후 현대는 박재홍 외에도 문동환에게 고향팀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대신 롯데로부터 발빠른 톱타자감 전준호를 획득했다. 프로와 아마추어팀 사이의 이상한 삼각 트레이드였던 셈인데 아무튼 유니콘스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 현대는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박경완과 조규제까지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당시로서는 큰 손인 삼성조차 쉽사리 생각할 수 없는 금액을 주고 선수를 영입했다. 이들은 1998년 첫 우승을 비롯해 현대가 한국시리즈에서 4번의 우승을 차지하는데 직간접적으로 공헌을 했다.
 
현대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00년. 현대는 신생팀 SK에게 자신들의 연고지였던 인천 및 경기, 강원 지역을 내주고 몇 년후에 서울로 입성할 예정이었다. SK에게는 54억원을 함께 받았다. 이 돈은 현대가 서울 연고팀인 두산과 LG에 27억원씩 내고 서울로 들어가는데 써야했다. 하지만 현대는 모기업 재정난으로 서울 입성은 커녕 구단 운영비로 이를 모두 썼고 최근들어 54억원에 대해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도시 연고제를 도입해 현대 연고지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는 KBO에서는 이 돈이 SK로부터 받은 연고지 양도금으로 현재 수원 연고권을 가지고 있는 SK에게 수원 지역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고 연고권을 다시 확보하면 된다는 생각인 반면, SK는 현대가 두산, LG와 함께 서울을 연고지로 함께 쓰기 위해 서울 입성금을 대신 지급한 셈이라는 생각이다.
 
몇년간 현대의 발목을 잡은 연고지 문제에서부터 최근 자금난까지. 프로야구에서 한 때 삼성보다 더욱 큰 손으로 통했던 현대가 10년만에 빈 손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리고 인천을 포함해 경기, 강원 등 한 때 가장 넓은 연고지를 갖고 있던 현대는 현재 자금부족으로 수원에 자리를 잡기위해 도시연고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어찌보면 연고지 문제 또한 모기업 재정악화로 생긴 것이나 다름없으니 돈에 울고 웃은 현대 유니콘스의 10년사다.
기사입력: 2007/01/15 [09:42]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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