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스크린·드라마 악역
font color=steelblue>튀는 외모…능력, 악당 카리스마까지 못된남녀 전성시대
 
홍동희 · 조재원 · 황용희 기?
▲(왼쪽부터)박해미, 김윤석, 김성수, 송일국     © 스포츠월드

‘악역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는 주인공보다 오히려 악역이 더 돋보이는 사례들이 많다. 획일화된 이미지보다는 개성을 더욱 중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이들 ‘악당’들이 시청자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악당이 돋보이는 건 주인공보다 더 멋진 외모와 능력을 소유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MBC 드라마 ‘변호사들’에서 외국 로펌에서 파견된 변호사 석기 역을 맡은 김성수는 그런 이미지를 지닌 대표적 ‘악역’ 캐릭터였다. 석기는 모종의 음모에 휘말려 여주인공 김주희를 배신하고, 미국행을 택하는 다소 냉혈한 인물. 김성수는 극중 주인공 서정호 역의 김상경을 압도하는 외모와 능력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KBS ‘쾌걸춘향’의 변학도 엄태웅도 김성수와 비슷한 케이스. 악역을 맡았지만 남자 주인공역의 재희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SBS ‘천국의 계단’의 김태희 역시 악랄한 악역으로 주목을 받으며 톱스타로 급부상했다.
 
‘주몽’의 송일국은 ‘해신’에서 주인공인 장보고 최수종과 대립각을 이루는 염장으로 나와 오히려 최수종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후 그는 영화와 방송계 캐스팅 1순위로 떠올랐고, 결국 ‘주몽’으로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 반면 ‘주몽’에서는 주몽 송일국과 대립각을 이루는 대소 역의 김승수가 최근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뭐니해도 요즘 악역으로 가장 주목받은 배우는 영화 ‘타짜’와 드라마 ‘있을 때 잘해’의 김윤석. 그는 영화 ‘타짜’에서 전설의 타짜 아귀 역을 맡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충무로 캐스팅 1순위로 떠올랐다. 또 그는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에서도 바람피우는 남편역으로 나와 주부 시청자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고는 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캐릭터를 소화하며 스타자리를 예약했다. 뮤지컬 스타 박해미도 지난해 ‘하늘이시여’에서 악녀로 급부상하며, 최근에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주연으로 캐스팅 되는 등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악역이 주목 받는 이유는 최근영화나 드라마의 스토리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악역의 역할이 단지 선과 악을 구분짓기 위해 등장하는 단순한 ‘악당’ 개념이 아니라, 이야기의 또 다른 주체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보통 악역 캐릭터를 맡는 배우들에게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고도의 연기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얀거탑 악역 김창완
비수 감춘 가식적 웃음… 악인 새캐릭터 창출

MBC ‘하얀거탑’이 방송 전 캐스팅과 관련해 방송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릴 무렵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유일한 대목은 다름 아닌 김창완이었다.
 
대학병원 내 의사들의 야망과 생존 욕망, 그리고 권력다툼을 다룬 이 드라마에서 김창완이 입는 하얀 가운의 주인공인 부원장 우용길의 캐릭터는 가식적인 웃음 뒤에 끈적한 혓바닥과 비수를 숨기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일본판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이 배역은 인간의 양면성과 내적 갈등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다른 배역들과 달리 비교적 노골적으로 속물성을 드러내는 인물로 돌출돼 있기도 하다.
 
늘 ‘산할아버지’와 ‘고등어’를 노래하며 푸근하고 순수하게 마음의 안식을 줄 것 같은 그룹 산울림의 맏형이 이 백년 묵은 능구렁이 같은 배역과 접점을 이룰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의외성은 성급하게 ‘미스캐스팅임에 분명하다’고 새치 혀를 놀린 이들을 멋지게 제압했고, 김창완이 연기하는 우용길은 극 초반 ‘하얀거탑’의 매력과 긴장감을 높이는 주요 포인트가 됐다.
 
데뷔 22년만에 악인의 결을 생생하게 보듬고 있는 김창완은 최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악인의 반대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척 하는 사람일 지 모른다”고 선과 악의 모호함을 지적하며 이번 우용길 캐릭터와 만난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님을 강조했다.
 
‘하얀거탑’의 안판석 PD는 한 잡지에 실린 김창완의 사진을 보고 선하기만 할 것이라는 김창완의 고정이미지 뒤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했고, 김창완 역시 새로운 옷을 입어보고 싶은 당연한 배우의 욕심에 기꺼이 이 배역을 받아들었다.
 
‘하얀거탑’에서 상대의 마음과 잔머리를 꿰뚫는 듯한 김창완의 피로한 눈빛은 기존의 뻔한 악인의 표현방식과는 다른 개성을 내뿜는다. 마치 처음 입는 옷이 너무나 오래 기다려온 맞춤옷이라는 듯 생생하게 말이다.
 
김창완은 “수많은 드라마가 나오면서 악인의 전형이 생겼고 나는 거기서 좀 벗어나 있어 파격으로 보이는 것 같다”며 “앞으로 김명민이나 젊은 친구들의 일품인 연기가 극의 중심을 잡을 테고 나는 빛나는 조연으로 남겠다”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하고 어눌한 말투로 이번 드라마에 대한 애착을 내비쳤다.
 

폭력·복수·반항… 인간 악동심리 자극
‘마음속에 ‘숨은 악동’을 자극하라.’
 
요즘 인간 내면에 잠재돼 있는 ‘악동심리’를 자극, 마케팅으로 연결시키는 시도가 광고계는 물론 대중문화계 전반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악동심리’란 폭력적인 심리, 반항적인 심리, 복수 심리, 훔쳐보고 싶어하는 심리 등 인간 내면 깊숙이 묻어둔 ‘뒤틀린 심리’를 모두 총칭한다.
 
악동심리를 이용, 크게 성공한 사례는 호주에서 볼 수 있다. 호주의 모델 출신 사업가인 앨 맥퍼슨은 속옷만 입은 채 일상에 몰두하고 있는 한 여인을 훔쳐보는 ‘관음증 광고’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대중문화계에서는 이미 영화 ‘친철한 금자씨’ 등 박찬욱감독의 복수시리즈와 엄정화의 ‘오로라 공주’, 황정민 류승범의 ‘사생결단’ 등이 비교적 ‘악동심리’를 잘 활용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에서도 악역은 짭짤한 재미를 봤다. ‘하늘이시여’로 떠오른 박해미와 최근 영화 ‘타짜’등에서 열연한 김윤석이 바로 그 예다.
 
성적매력을 활용한 사례도 ‘악동심리’를 이용한 트랜드와 연결선상에 있다. 인간 내부에 잠재된 악동심리를 성적매력으로 풀어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적매력이란 퇴폐적이면서도 ‘섹스어필’한 환타지일수도 있다.
 
여성 화장품에 꽃미남 광고 모델을 활용한 더 페이스샵은 극적인 반전으로 ‘성적매력을 극대화시킨 케이스’다. 더 페이스샵의 권상우가 보아와 전지현을 내세운 미샤와 라네즈걸을 압도한 것이다.
 
이같은 악동심리는 경제 불황, 양극화, 경쟁지상주의 등 최근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회적인 환경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이같은 어려운 사회상에 막연히 증오심을 느끼고, 반감을 갖는다. 요즘 소비자들은 잠재된 악동심리를 공유하면서 이를 재미있게 해소하고 싶어한다. 대중문화계에 악역이 뜨고, 복수가 새로운 코드로 활용되는 것도 모두 이같은 사회상의 반영인 것이다.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스포츠월드]
기사입력: 2000/01/16 [15:4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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