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한 배우 강혜정
벗길수록 새록새록 양파같은 그녀
 
김민성 MTM 대표·서울종합예술?
▲강혜정    

‘올드보이’의 메이킹 필름에서 그녀의 오디션 장면을 보았을 때 필자는 매우 반가웠다. 어디서 구했는지 식칼을 들고 빙빙 돌리며 그녀만의 독특한 보이스를 선보인 연기는 심사위원들을 감탄시켰고, 결국 강혜정은 슬프거나 신비롭기도 한 연인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혜정이 필자의 교육기관에 있을 당시, 당차고 똘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얼굴도 최근 치아교정으로 인해 옛날보다는 순해졌지만, 기본적으로 강혜정은 고양이를 닮은 앙큼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혜정은 소위 말하는 ‘몸짱 스타’나 화려한 미모의 여배우는 아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강혜정을 떠올릴 때, ‘올드보이’의 슬프고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미도나, ‘웰컴 투 동막골’의 순진한 광녀 여일로 많이 기억한다.
 
조금만 더 보태면 일본의 연기파 배우 아사노 타타노부와 공연한 ‘보이지 않는 물결’의 노이와 ‘도마뱀’의 아리 정도. 게다가 이번에 개봉한 영화 ‘허브’에서의 상은이까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혜정은 마르고 작은 몸집에 눈물이 똑 떨어질 눈을 하고서는 외계어를 지껄여 대는 신비한 소녀(아직까지는 여자란 말이 낯설다)이다. 이상함으로 둘둘 포장한 기묘한 연약함, 남녀를 불문하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강혜정의 스펙트럼은 이 영화들로는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넓다. 특히 강혜정은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겠지만 ‘은실이’라는 드라마에서 소실 자식인 은실이를 괴롭히는 표독한 영채역으로 데뷔하게 된다.

물론 사람들은 성인 배우나 은실이를 기억했지만, 영채 역이 강렬해서 그런지 과자CF에 출연하는 등 나이에 맞는 귀엽고 깜찍한 컨셉트로 활동했다. 하지만 잠시 활동을 멈춘 강혜정은 갑자기 나타나 독립SF영화인 ‘나비’에서 임신한 10대의 여행가이드 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이 영화는 강혜정의 존재를 알린 ‘전주곡’ 쯤 되는데, 나중에 그녀가 ‘올드보이’에서 보여준 좋은 연기의 한 발판이었다. 특히 물속에서 아이를 낳는 장면을 본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장면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되도록 작가주의 영화만을 고집할 줄 알았던 강혜정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연애의 목적’이라는 상업영화에서 ‘강혜정도 섹시하고 예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섹시하고 여우같던 여자가 또 웰컴 투 동막골의 만년 소녀 같은 광녀로 돌아온 것을 보며 필자는 교육원 당시의 당찬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았고, 무서움도 느꼈다.
 
강혜정 자신도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듯, 일상적인 부분에서야 어쩔 수 없겠지만 아무리 비슷한 역할을 맡더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이제껏 고른 영화에 어떤 후회도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볼 때 ‘이 친구 보통 영민한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배우는 여러 개의 얼굴과 인생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인데, 강혜정은 무난하게 이것들을 소화해 내고 있다.
 
자신을 어떤 인물 속에 구겨넣기보다는 인물 그대로가 되어버리는, ‘강혜정’이라는 무서운 친구의 행보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강혜정은 어떤 영화에 출연할지 가늠할 수 없게 자신의 넓이를 무한정 확장해갈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그녀는 아직 젊고 총명하니까.
기사입력: 2000/01/20 [10:3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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