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특별기획공연 봉鳳래來의儀, 봉황이여 오라
 
김정희기자
▲     © 영남조은뉴스
국립국악원은 조선왕조 예악(禮樂)정신의 대표작인 <봉래의>(鳳來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품 “봉래의, 봉황이여 오라”를 2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 국립국악원이 조선왕조 대표적 레퍼토리 중 하나인 <봉래의>를 통해 조선초기의 음악과 복식을 본격적으로 무대화하기 위하여 2006년의 작품을 다시금 정비하여 선보이는 것이다.

조선초기 정재의 춤사위를 안무에 반영, 독자적인 연주 양식을 기본으로 계산된 연출의 변화를 통해 형상화하고, 고문헌 자료를 시각화하여 현장에서 펼쳐지는 춤과 동시에 관극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을 가미한 무대연출로 다시 태어난다.

이처럼 고증과 복원의 성격을 한층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오랜 시공간적 차이에서 느껴질 수 있는 문화적 이질감을 최소화 하는데 무게를 둔 현대적인 감각으로 융화된 새로운 개념의 공연 양식으로 무대화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본 공연을 통해 국립국악원이 보유한 소중한 예술적 자산을 총집결한 격조 있는 무대를 만나보기 바란다.

복원으로 되살아나는 조선왕조 500년의 자부심 <봉래의>

<봉래의>의 음악과 노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에 창제 당시의 악보가 모두 수록되어 있으며, 왕조를 통틀어 최고의 음악이론서로 손꼽히는 「악학궤범」(1493)에는 그 춤의 절차와 내용이 상세히 망라되어 있다. 본 공연의 제작진은 이 두 고문헌의 기록을 바탕으로 마치 공룡의 화석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생명을 불어넣는 마음으로 공연예술의 새로운 모범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고증이라는 뼈대’에 ‘현대라는 살’을 붙이고, ‘창의라는 옷’을 입힌 셈이다.

현재까지 전하는 우리 궁중예술의 원류는 대부분 세종시대에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무형문화재 1호로 숭상되는 <종묘제례악>이 그러하고, <봉래의> 수록곡인 <여민락>이 그러하다. 그만큼 <봉래의>는 왕조의 자부심을 높이고, 권위를 세우기 위한 대표적인 상징적 존재로 인식되었으나, <종묘제례악>에 비해 그 명맥은 우리에게 올곧게 전해지지 못했다. 이에, 국립국악원이 무대예술로 재구성하여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봉래의> 복원은 이 시대의 전통예술가들에게는 고문헌과 머리 속에서만 머물던 뜬구름 같은 존재였다. 일찍이 <봉래의> 복원에 관심을 갖던 예술가들조차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 조선조를 통틀어 <봉래의>가 연행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면, 그 거대한 규모의 공연예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음을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세종조 창제 이후 약 500년이 흐른 대한제국 시기에 <봉래의> 복원작업이 시도된 바 있으나, 아쉽게도 세종조의 내용에는 미치지 못하고, 고종조의 당시 연주되던 음악으로 대체하여 그 명맥만을 유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당시의 음악을 활용했다는 사실은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세종대의 <봉래의>를 복원하는 작업이 얼마나 방대하고 난해한 작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조에 이루어진 3세기만의 <봉래의> 재현작업은 분명 대한제국 선포와 더불어 조선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국가를 준비하기 위한 강력한 암시였다. 이 자주적 정신을 전통문화의 정통성 강화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국립국악원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초연된 ‘봉황이여 오라’는 세종 당대의 음악이 전하지 않으므로 현재 연주되는 곡조에 <용비어천가> 가사를 실어 노래할 수밖에 없었으며, 복식 등의 시대설정 또한 조선후기의 형태를 따랐기에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공연에서는 작년 정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세종조의 음악이 있었기에 비로소 세종의 숨결을 보다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음악에 무보에 기록에 내재되어 있는 함축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춤 동작을 재해석하였다. 오랜 제작기간 동안 공연방식에 대한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고증에 의한 조선전기의 궁중 여기복식(의상, 머리 등)과 음악, 무용이 어우러지는 현대적인 공감각의 세계가 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져 볼거리를 더한다.

비룡의 노래 <용비어천가>와 봉황의 춤 <봉래의>의 만남

<용비어천가>는 조선초 악장(樂章)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세종조(1445년)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지어 올린 것이다. 그 내용은 조선의 창업자를 용에 비유하며 찬양하고 국가의 평안과 국운의 번영을 바라는 시가(詩歌)로 「세종실록」에 수록된 악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용은 머리에 뿔이 있고 몸통은 긴 몸과 비늘을 가지고, 온갖 조화를 일으킨다는 여의주를 물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네 다리를 가진 전설적 동물이다. 몸을 뒤틀며 하늘로 올라가며 무소불위의 힘과 권능을 가졌으며, 춘분에는 하늘로 올라가고 추분에는 연못에 잠긴다고 여겨졌다.

이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는 <봉래의>는 시절이 태평하면 출현한다는 봉황이 날아온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봉황은 용, 기린 등과 같은 고대의 상상의 동물인데,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나타난다는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상상의 새로, 봉황이 날면 모든 새가 그 뒤를 따른다고 한다. <봉래의>도 여러 새를 상징하는 의물인 봉선, 작선, 미선 등이 등장한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600년마다 열리는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한 고사에 의해 죽간자의 대나무 가지 끝에 수정 구슬을 달아서 대나무 열매를 상징하며 보다 구체화 시키고 있다.

시(詩)와 가무(歌舞)가 합일하는 완성된 악(樂)의 구현

유가(儒家)에서는 난세를 극복하고 치세를 이루고자 하는 오랜 소망에서 예악을 주장해 왔다. 따라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시가무합일: 詩歌舞合一)이 악(樂)으로서, 마음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작용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공연의 큰 의미는 <봉래의>에서 부르던 세종조 음악을 복원하고, <용비어천가>의 가사를 무용수들이 직접 노래하며,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춤으로써 비로소 시(詩)·가(歌)·무(舞)가 합일하는 악(樂)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악 <여민락>과 향악 <치화평>·<취풍형>의 조화

<봉래의>는 궁중정재 중에서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의 요소가 융합된 유일한 작품으로 매우 독특한 형식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봉래의>는 전주곡(서곡)에 해당하는 <전인자>와 시작을 알리는 <진구호>, 당악인 <여민락>, 향악인 <치화평>과 <취풍형>, 끝을 알리는 <퇴구호>, 후주곡인 <후인자>로 구성된다.

이들 중 <용비어천가>의 한문가사[海東六龍飛~]를 가진 <여민락>은 당악곡으로서, 왠지 모르게 흐르는 이 단순한 가락이 지금은 실체를 알 수 없지만, 15세기 중국 당대의 음악이 아닌가 연상하게 만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글가사[海東六龍ㅣ 샤~]를 노래하는 <치화평>과 <취풍형>은 향악곡으로서, 당악인 <여민락>에 비해 규칙적인 후렴구가 돋보이며, 향악 특유의 다양하고 화려한 가락을 뽐낸다.

일 시 : 2007년 2월23일(금) 저녁 7시 30분 / 24일(토) 오후 5시
장 소 : 국립국악원 예악당(대극장)
내 용 : <용비어천가>를 노래한 조선왕조 자부심 15세기의 「세종실록」의 <봉래의>와 「악학궤범」을 바탕으로 재현한 새로운 개념의 무대화
연 출 : 이병훈
안 무 : 심숙경
무 대 : 이경표
영 상 : 김준섭
출 연 : 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이진호), 정악단(예술감독 김한승) 등 138명(객원포함)


사진설명 : 봉래의 연주

 뉴스 출처 : 국립국악원


기사입력: 2007/01/31 [09:4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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