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영어축에도 못낀다"고요?
 
조화유 기자
EBS에서 성경으로 영어강의한다는 도올 김용옥의 벌언을 듣고

   도올 김용옥 교수(이하 도올로 약칭함)가 2월6일부터 한국 EBS TV를 통해 “영어로 읽는 도올의 요한복음” 강의를 시작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도올은 이 강의를 홍보하기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회화는 영어축에도 못낀다. TV 보고 영어회화 배운다고 앉아있을 시간 있으면  영어로된 책을 읽어라. 회화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중요한건 좋은 영어를 쓰는 작문 실력이다. 관광안내 책자 하나 제대로 써내지 못하면서 영어 잘한다고? 인보이스 잘 쓰고, 편지 잘 쓰는 것이 영어 잘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영어 잘 하는 사람 별로 없다. 나보다 영어 더 잘 하는 사람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김우창 교수뿐이다...” 대충 이런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는 또 “나는 영문 5형식 밖에 모른다. 5형식과 단어만 많이 알면 된다”고도 말했다.

한국인이 영어를 잘 하려면 먼저 5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영문법을 잘 알아야 하고 또 단어를 많이 알고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느라고 도올이 “회화는 영어도 아니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spoken English (말하기와 듣기)보다는 written English (작문과 독해)를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이 도올의 주장인듯 하다.
  
   그러나 필자는 spoken English와 written English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해야 정말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제기획청 장관과 참의원의원을 지낸 데라사와 요시오라는 사람은 전에 한국 일간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지금 아시아 각국에서 많은 국제회의가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회의에서 영어로 끼어들지 못하는 일본 대표들만이 자기들끼리 모여앉아 외톨이가 된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나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것이 비록 일본만의 이야기일까? 한국도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국제회의에 대표로 나간 많은 한국 사람들이 3S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3S란 말없이(silent) 미소만 짓다가(smile) 존다(sleep)는 것이라 한다. 국제대회에 대표로 나갈 정도면 최소한 중/고/대 10년간 영어를 배운 사람들일 것이다. 영문법 지식도 상당하고 단어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국제회의장에서 3S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영어 독해와 작문에만 치중했지, 영어를 알아듣고 입으로 말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 자신이 바로 그런 교육을 받은 전형적인 케이스다. 나는 1972년  TOEFL시험을 치고 작문부문과 어휘(단어)부문 성적은 전 세계 응시자 중 최고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해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대학원에서 연구조교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위과정에 들어갔다. 나는 시험지나 리포트에 유창한 영어를 써냈고, 교수들은 영어 잘한다고 칭찬했다. 한 교수는 내가 써낸 리포트에 A학점을 주고는 “미스터 조, 당신은 대부분의 미국인들보다 영어를 더 잘 쓴다”고 영어로 적어놓았다.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자존심을 한방에 날리는 쇼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때 나는 용돈을 벌기 위해 대학 구내식당에서 busboy(웨이터 보조원)로 이른바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식당의 매니저가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고시켜버린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일인가?

   말이 된다. 왜냐하면 나는 학문적인 고급영어는 강의실에서 잘 알아듣고 또 잘 써냈지만

보통 미국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상생활영어 알아듣고 말하는 것이 고급영어 알아듣고 쓰는것 보다 훨씬 더 긴급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내 경험을 토대로 “이것이 미국영어다” 씨리즈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올은 한국에서 자기보다 영어 잘하는 사람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외에는 김우창 교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Milton의 시(詩)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김교수에게 물었더니 김교수가 금방 어디 어디에 있는 것이라며 가르쳐주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교수의 영어실력을 극찬했다.
  
   필자는 도올 김용옥은 물론 김우창 교수와도 일면식이 없다. 그래서 그 분들의 영어 실력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Shakespeare나 Milton의 희곡이나 시를 달달 외운다고 영어 잘하는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미국 영화 딱 한번만 보고 대사 완전히 다 이해하는 사람이 정말 영어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미국 생활 30년이 넘은 필자도 아직 미국 영화 대사 100% 다 이해하지 못한다. 배우들이 말을 너무 빨리 하거나 발음이 분명하지 않게 말하면 나도 무슨 소린지 모를 때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말을 글로 써놓으면 대개 다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귀로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단히 실례가 되는 말이 될지 모르지만, 미국 영화 시나리오를 도올에게 주고 번역하라면 아마 어렵지 않게 해낼 것이다. 그러나 영화 화면을 보고 그 대사를 받아 적어보라고 하면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듣기와 영어 말하기 교육이 꼭 필요한 것이다. 좋은 영어 문장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 말 제대로 알아듣고 제대로 대화할줄 아는 것은 더 중요하다. 실제로 미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힘든 것이 미국인들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실토한다. 상대방 말을 알아듣기만 한다면  한국에서 배운 학교영어실력으로 적당히 머릿속에서 작문해서 대답은 할수있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를 볼 때나 실제로 미국인과 대화를 할 때 내가 상대방 말을 100% 다 이해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경우는 그들이 내가 모르는 숙어(idiom)나 속어(slang)을 쓸 때이다.

    미국인들은 영어사전에도 없는 Cut to the chase.란 말을 많이 쓴다. cut는 “자른다”는 뜻이고 chase는 누구를 뒤쫓는 것 즉 “추격“이다. 도올 식으로 문장 5형식과 단어만 가지고 해석을 해보라. 도저히 해석이 안된다. 이것은 Get to the point.(요점만 말하라)는 뜻이다. 미국 TV나 영화에는 경찰차가 범인차를 고속으로 추격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경찰이 범인을 추격하게 될 때까지의 얘기는 지루하니까 잘라버리고(cut) 범인차를 추격하는(chase) 장면으로(to) 바로 가라는 표현이다.
   
    이런 숙어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말에도 숙어가 많지만--예컨대 “옷을 벗는다”는 “관직을 사임한다”는 뜻--영어에는 숙어가 얼마나 많은지 미국에서 30년이나 살아온 나도 미국 TV를 보거나 신문을 보면 모르는 숙어가 매일 적어도 하나는 꼭 나온다. 이런 숙어나 슬랭을 모르면 미국 사람들이 하는 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단어는 또 얼마나 많은지 미국 신문이나 책을 볼 때 매일 모르는 단어 두, 서너개는 꼭 나온다.   
  
  도올은 EBS 강의시간에 기독교 성서 요한복음을 해석할 것이라 한다. 필자는 종교를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성경을 교재로 쓰는 것을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도올의 강의 목적이 성경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 많은 좋은 책 다 놔두고 하필이면 왜 성경의 일부를 교재로 쓰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 성경보다는 현대생활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와 숙어, 그리고 새로운 표현들이 많이 들어있고 또 재미도 있는 그런 책을 교재로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경에는 beget (아이를 낳다)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워싱턴 포스트 신문 칼럼니스트 Joel Achenbach는 1월28일 쓴 그의 칼럼에서 beget이란 단어는 “2000년 동안 아무도 쓴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성경 가지고 TV에서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도올에게 참고가 될것 같아 소개한 것이다.   
기사입력: 2007/02/03 [11:16]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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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히 2012/11/22 [13:15] 수정 | 삭제
  • 도올선생님의 강의방식이 잘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