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 꽃 향과 행복
일상의 작은 것을 소중한 보물로 만드는 마법
 
정기상 기자

    “아 ! 그윽하다.”
  어디에서 나는 향일까. 방안에 은은하게 번지고 있었다. 고운 향에 취하니, 감미로움에 젖어든다. 가라앉은 기분을 바꿔준다. 변화 없는 일상으로 인해 참을 수 없는 정서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자극하는 맑은 향이 온 몸을 휘감아버린다. 나를 놓아버릴 수 있게 만들어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은은한 향     © 정기상



  “치자 꽃 향이잖아요.”
  푹 빠져버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에 집사람의 말이 울린다. 아득히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에 몽롱해진다. 현실의 공간에 공존하고 있는 소리가 아니라, 천상에서 공명되고 있는 듯하다. 한 치 앞으로 보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가엾은 중생을 구제해주기 위한 성자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치자 꽃이 피어 있다. 언제 피었을까. 앙증맞은 모습으로 초록 이파리 사이로 뭉실뭉실 피어난 꽃이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다. 올망졸망한 꽃들이 예닐곱 개씩 뭉쳐서 피어나고 있는 꽃의 모습이 공존을 표현하는 것 같다. 잘났다고 앞서지 않고 사이좋게 피어있는 꽃이 감동을 자아내고 있었다.


  행복은 돌출하기 때문에 사라진다. 앞서고 싶은 마음이 망치게 하고 교만으로 인해 자랑하고 싶을 때 사라진다. 다른 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때 시나브로 나타나는 것이 행복이다. 인위적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면 저만큼 멀어지는 것이 행복의 속성이다. 치자 꽃은 그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교만하지 않고     © 정기상



  경쟁하지 않는다. 공존하고 있다. 잡아주고 밀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은 홀로 피어 있지 않다. 먼저 피어나지도 않았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피어 있다. 꽃은 낮은 곳으로 임하고 있다. 자신을 낮추고 자리를 양보하고 있었다. 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행복이란 편안함이다. 사진 속에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안으로 움츠리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행복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원래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교만이란 구름이 벗겨지면 시나브로 드러나는 것이 행복이다. 감춰져 있던 원래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치자 꽃의 색깔처럼 말이다. 꽃의 색깔이 화려하지 않다. 하얀 색깔이 마음을 꽉 잡아버린다. 너무 밋밋하다는 생각을 엷어지게 하는 배려도 보인다. 분홍빛이 살짝 배어 있어 행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치자 꽃의 모습은 행복의 얼굴이 어떠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내 안에 있는 행복     © 정기상



  “밖에 있는 꽃만 찾지, 집에 있는 꽃에는 관심이 없지요?”
  치자 꽃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고 집사람이 핀잔의 말을 한다. 그 말에는 많은 것이 함유되어 있었다. 행복을 찾기 위하여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지적하고 있었다. 행복이 내 안에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어리석은 나를 힐난하고 있는 것이었다.


  행복은 원래 존재하고 있었다. 그 것도 밖이 아니라 내 안에 말이다. 욕심이 행복을 숨기고 경쟁이 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을 뿐이었다. 행복을 가져야 하겠다는 이기심이 행복에게서 더욱 더 멀어지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지려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멀어지는 까닭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화려 하지 않은 치자 꽃이 그 것을 말해주고 있다. 방안에서 시나브로 피어나 있는 꽃이 진리를 밝혀내고 있었다. 맑은 향이 그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더 돋보이는 추억처럼 행복도 그렇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기억들이 행복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집사람은 마법사     © 정기상



  치자 꽃의 고운 향은 집사람을 닮아 있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사진틀에 닮는다.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다 간직하고 있다. 채워진 하나하나가 모두 보물이 되어지고 있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더욱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하찮은 일이지만 그 것이 사진틀 안에서 세월로 갈고 닦여져서 빛나는 보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치자 꽃처럼 집사람은 마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한 겨울의 회색빛 속에서 묵묵히 극복하여 꽃을 피워낸 치자나무는 분명 마법사다. 마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고운 향을 뿜어내는 꽃을 피워낼 수 있단 말인가. 일상의 작은 것을 가지고 소중한 보물을 만들어내는 집사람도 분명 마법사다.


  눈을 감고 치자 향에 취한다. 눈을 감고 있으니, 지난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변하여 물결치고 있다. 세월을 먹고 당시에는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이제는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보석이 되었다. 하찮게 느껴지는 오늘이 왜 빛나는 보물이 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春城>
기사입력: 2007/02/08 [12:4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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