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남면 동관리에 비신 있다
지방 문화재자료 지정 예고 중 인 강희 46년 비신이 있다
 
박종구 기자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 산 178번지에는 강희 46년(조선시대 1707년)으로 추정되는 관음사 사적비 1기 가 있어 따라가 보았다. 비신의 높이가 169cm, 폭 80cm, 두께 43cm 의 대규모  비신(碑身)은 관음사 도의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 지는데 임란 후 17세기 초 중수되면서 많은 속암이 딸린 대규모 사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 박종구 기자

 1707년 이 후 어느 시기에 화재를 인해 다시 재건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관음사지 사적비로 보이는 비신은 1707년(숙종 33년) 자연암반에 12cm 정도의 깊이를 파 세운 것으로서  대좌와 비수는 훼손 된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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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남면 동관2리에는 관음사 사적비로 추정되는 비신을 볼때 이곳은 관음사의 구지(舊址) 였음을 틀림이 없어 보인다. 지금도 와편과 주초 그리고 석탑부재와 부도승탑이 있는것으로 보아 이곳에는 매우 큰 사찰이 있었음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사찰은 통일신라시대의 대규모 사찰 이었으나 그 후 소실된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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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적비신에 의하면 당 나라 정관 초기에 도의선사{생몰미상, 신라후기스님으로 추정, 호는 원적 성씨는 왕씨로 북한군(北漢郡) 출신}가 이곳에다 초제를 지내고 관음사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후 임란때 소실 되어 중창을 하였으나 강희 무오년(1678년) 또 화제로 소실되어 민간태사가 주축이 되어 다시 중창 하였고, 그 공적을 기리고자 강희 46년(숙종 33년) 5월에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비신 하단에도 글자가 있는것으로 보아 대좌 또한 제것이 아닌것으로 보이고 비신은 있어야 할 자리에 흔적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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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비신 가까이 부도승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관음사 사적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러가지 면을 살펴보면 이곳이 비신이 있었던 제자리는 아닌것처럼 보인다. 다만 비신 글자가 하단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좌대 또한 제것이 아닌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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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구전에 의하면 이곳은 범찰로서 주위에는 구병산 해발 876m 하의 삼불봉과 형제봉을 중심으로 12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세조암, 명경대암, 봉선암, 염불암, 낙수암, 적수암, 금선대암, 동암 영산전 등 이 있었다고 하고 이곳 주변에는 물레방아가 12 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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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맷돌로 보이는 하부 돌판의 크기가 어느정도 인지 독자들이 쉽게 가늠토록 하기 위하여 맷돌 위 담배갑을 올려 놓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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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물레방아가 12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입증 할 수 있는 물레방아 돌절구 하부판으로 보이는 것이 이곳 가까이서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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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곳 근방에는 조선시대 기와로 보이는 두터운 와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상주시청 곽희상 문화재담당에 의하면 비신은 경상우도 상산서면 속리산 관음사 사적비로 추정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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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 가까이에는 산신을 모시고 기도하는 곳으로 보이는 매우 정교하게 만든 기도터도 있다.  또한 이곳 비신은 상주시청에서 지방문화재 지정을 예고한 상태라고 곽희상 문화재담당은 귀띔하여 주었다.....
기사입력: 2007/02/12 [09:51]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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