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 인물은 인물이다
 
안희환 기자
 고건.jpg


대선 후보로 등장하려다가 중도하차하기는 했지만 고건 전 총리는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고건 전총리가 대선 후보로 나오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대선 정국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고, 공연히 고건 전 총리의 이미지만 구길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일찍 결단을 내리고 뒤로 물러난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대선 후보라고 하는 것이 명암이 엇갈리기로 유명한 위치인데 많이 알려지기도 하고 확 뜰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대권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격렬한 접전 속에서 많은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차라리 대선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로 남은 시간들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것의 위험성입니다. 그런 면에서 빨리 정리를 한 고건 전 총리의 판단은 다행스럽다고 할 것입니다.

제가 고건 총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로서의 검증작업이나 지지 혹은 반대의 부담에서 벗어난 상황이기에 편안하게 고건 전 총리의 장점들을 언급해 보려고 합니다.


1. 탁월한 행정력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고건 전 총리의 장점은 탁월한 행정력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새마을 운동의 전담자가 되어 새마을 운동을 설계하고 추진해낸 인물이 바로 고건 전 총리입니다. 이 일로 인해 박대통령의 인정을 받은 고건은 1975년 전라남도 지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때 고건의 나이가 겨우 37살이니 최연소 도지사가 된 것이고 아직까지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2년도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인은 없을 것입니다.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해이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서울 시장을 맡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사람이 고건입니다. 상암동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축구 전용경기장을 만들고 난지도 쓰레기 매입장을 개발하여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 그때의 일인데 그런 대사업을 차질 없이 처리했으니 칭찬할 만 합니다.


2. 위기에 강한 인물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고건 전 총리의 장점은 위기에 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정부가 시작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내각이 새롭게 바뀌는 것이 수순인데 고건 총리는 총리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총리로 지목한 김종필씨의 국회임명 동의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무위원 임명을 위해서는 총리의 제청이 필요하기에 공백으로 둘 수 없는 총리직을 고건이 수행하였는데 고건은 그 모든 역할을 잘 마무리 하고 퇴임하였습니다.

고건이 위기의 상황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일은 참여정부 시절에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사상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소추를 겪게 됩니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탄핵심판을 기각하고 말았지만 그 기간 동안 고건은 권한대행으로서 정부 각 부처의 모든 업무를 철저하게 챙김으로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때 고건 전 총리는 여론과 여야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3. 청렴함을 갖춤

셋째로 고건 전 총리의 장점은 청렴함에 있습니다.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을 언급하지 않아도 권력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부패로 연결되기 쉽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패의 상당 부분이 돈과 관련이 있으며 이 부분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고건 전 총리의 물질에 대한 청렴함은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건 전 총리가 임기를 마친 곳에서 이익을 챙긴 예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건이 전남 도지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 아버지 박형곤 박사는 일가친척을 서울로 소집하였고 아들인 고건에게 청렴에 대한 일장 훈시를 하였다고 합니다. 로비하는 사람이나 그에 응하는 공무원이 다 나쁘지만 로비하는 쪽은 이익을 더 크게 얻는 것이고 그에 응하는 공무원은 작은 이익에 농간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농간당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입니다. 훌륭한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4. 소신을 가지고 있음

네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고건 전 총리의 장점은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건 전 총리를 무르게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고건 전 총리는 상당한 소신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1987년) 고건은 경찰 병력을 투입하여 24시간 내에 명동성당 사태를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88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바티칸이 반발하면 경제에 큰 피해가 우려되며, 강압적인 진압이 계엄령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전대통령의 지시를 반대합니다.

2002년 6.13일 지방 선거를 앞두고 고건은 불출마를 선언하는데 현 시장으로서의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출마 결심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에 시장직을 수호해야할 민주당은 난감한 입장이었고 고건 시장을 만류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에 대한 애정이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건 전 총리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포석 운운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울시장을 한번 더 역임하는 것보다 더 좋은 대안이 없는 한 그런 비판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5. 여러 대통령의 신임

다섯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고건 전 총리의 장점은 여러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생략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잘 붙어 다니는 처세술의 달인이라는 비판거리가 되기도 하는 부분인데 장점을 언급하면서 비판거리를 말하는 것은 실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 입장에서 사람을 기용할 때 역량이 되지 않는 사람을 기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 대통령에게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건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 때 새마을 운동을 맡아서 운영했으며 최연소 전남 도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후 박대통령의 부름으로 정무 제2수석 비서관이 됩니다. 박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최규하 대통령은 고건을 정무수석에 임명합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 고건은 내무부 장관에 기용되었으며 노태우 대통령 때에는 서울시장을 역임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에는 국무총리가 됩니다. 심지어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도 국무총리를 역임합니다.

아마 고건 전 총리만큼 화려한 인생 여정을 보낸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 정도의 성취만을 가지고도 평생을 뿌듯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런 고건 전 총리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햇빛만을 추구한 사람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햇빛을 쫓는다고 그런 삶이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을 뿐입니다. 고건 전 총리는 분명히 큰 장점들이 있고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만큼 쓰임받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입력: 2007/02/14 [13:1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