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사랑의 중감 쯤에 머무른 이야기
샤론스톤의 고군분투를 그린 <실종>
 
이준 기자
이념과 사랑에 있어 어떠한 것을 택일해야 한다면? 이미 21세기 국경이 없는 글로벌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 이데올로기는 낡은 구시대 산물로 전락하고, 오롯이 북한을 중심으로 몇 나라에서나 적용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당시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각각의 이념이 대립되는 두 남녀가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피운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더욱 정확히 물어본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상대가 나와는 다른 이념을 가진 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셀리 타일러는 레오 카우필드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의 이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끝내 안녕을 고한다.

이들의 불꽃같은 사랑을 그린 작품 <실종>이다. 2004년도 작품으로 뒤늦게 3년 만에 국내에서 빛을 보는 작품으로 샤론스톤, 루퍼트 에버릿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그들은 각각 셀리 타일러와 레오 카우필드로 분해 열연을 펼친다.

거기에 영화는 미스터리 멜로를 표방하고 있어 사뭇 지루할 수 있는 멜로에 색다른 재미를 가미하였다. 특히,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21세기에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면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극의 흐름은 무척이나 잔인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인해 이질감과 잔인함은 희석된다.

그들의 사랑의 시작은 베이루트. 미국인 화가 샐리 타일러는 오랜 결혼 생활과 그저 그러한 일상에 지루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에 지인의 소개로 인상 깊은 만남을 갖는다. 바로 기자 레오 카우필드를 만나게 되는 것.

그녀는 자신이 이미 결혼한 상황을 잊은 해 그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이혼을 결심하고 그와의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그들은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지만 레오 카우필드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진다.

영화 초반과 중반부까지는 셀리와 레오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디까지는 멜로드라마 구조로 이들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더없는 이국적인 정취에 잘 버무려 보여준다. 주인공으로 분한 이들의 실제 나이를 안다고 해도 그것 따위를 아무런 거슬림이 없을 정도로 이들의 사랑은 로맨틱했다.

여기에 여전히 늙어도 아름다운 배우로 통하는 샤론스톤의 베드신도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전혀 야하지 않으면서도 극중에 이들의 뜨거운 사랑이 잘 표현되었다. 그리고 홀연히 레오가 사라진 이후 그의 행방을 쫒는 셀리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미스터리 멜로로 바뀌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극은 힘이 빠져 버린다. 미스터리의 긴장감은 온데 간데 사라진 채 그저 셀리가 레오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과 자신의 사랑이 허상이었을까, 의심하면서 그를 향한 열망과 그리움만 그려질 뿐 레오의 신분과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은 다소 허술하다. 그래서 미스터리 멜로를 표방하기 보다는 초반부처럼 이들의 로맨스를 멜로의 기승전결로 풀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레오가 공산국가인 러시아로 망명했다는 영국 정보국의 말을 들은 셀리는 러시아로 떠난다. 그녀는 남편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런던, 뉴욕, 모스크바까지 그를 추적한다. 자신의 아름다운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한 셀리의 집요한 로망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다.

레오는 여전히 공산주의가 새로운 희망이라고 굳건히 믿으며, 자신의 신념을 좇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사랑에 목을 맨 셀리는 이념과 사랑의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끝내 남편을 다시 찾지 않는다. 그리고 후반부는 이렇게 스릴러에서 다시금 멜로로 방향을 전환한다. 이 사이 극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남편을 추적하는 셀리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극적인 부분에 이르러서 너무나 쉽게 남편을 찾게 되어 미스터리의 긴장감은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베이루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셀리와 레오의 사랑만큼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비록 이념과 사랑이라는 구시대적인 산물이 등장하지만 셀 리가 사랑 때문에 환하게 웃는 웃음을 인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버린다.

그리고 사실상 ‘A Different Loyalty’도 다른 이념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원제를 생각한다면 미스터리 부분이 있다고 해서 이것을 미스터리멜로로 본다는 자체가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나라 장사 속으로 멋대로 ‘실종’이라 영화제목을 가져다 부치고, 미스터리 멜로라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영화는 이념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셀리와 레오의 일생과 사랑을 담은 올곧이 멜로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이 영화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으며, 셀리와 레오의 불꽃같은 사랑이야기 만큼은 잘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분명한 것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남녀. 샤론스톤과 루퍼트 에버릿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섹시스타로만 자리 잡은 그녀. 하지만 이미 카지노, 라스트댄스, 마이티에서 진지한 연기를 보여줘 좋은 평가를 얻어낸 그녀가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한다. 이성적인 화가지만 열정적인 사랑을 신념을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인 셀리를 누구보다도 잘 연기하고 있으며, 이념을 위해 투쟁하는 이중 스파이로 분한 루퍼트 애버릿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 떨어지는 연기를 해내고 있다.

한 번쯤 그들의 불꽃같은 사랑에 동참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이젠 낡은 구시대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만큼은 낡은 것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기사입력: 2007/02/15 [11:55]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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