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중심 정당체제돼야 정치발전
코리안 르네상스가 나라 살린다
 
김형준 칼럼니스트
1. 문제 제기
 
87년 민주화이후 한국 국회는 자신의 기본 기능인 행정부 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국회의 입법과정은 ‘행정부 대 입법부’라는 관계속에서 수행되기보다는 ‘정부·여당 대 야당’이라는 구도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즉, 의회라는 제도적 일체감을 형성하여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 의원들은 정부와 일체감을 가지면서 입법 활동을 하고, 야당 의원은 의정활동의 목표를 정부·여당을 반대하는 데 맞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여야간 의회 구성원으로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적으로 국회가 운영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국회는 갈등조정이 아니라 갈등 증폭의 장소로 전락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국회는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가장 개혁이 되어야 할 기관으로 지목되어 왔으며, 더 나아가 국회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코리아 르네상스를 위한 국정 어젠다의 핵심에 ‘국회 살리기’가 자리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정상화시켜 선진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위대한 대한민국을 위한 가장 급선무이다. 문제는 국회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국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기초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진단
 
한국 국회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못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국회가 정당정치의 핵심이 되지 못하고, 원외 정당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원외 정당체제가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개정을 추진 중이던 법안이 별안간 폐지로 변하고, 당 대표가 갑자기 국가 정체성을 지적하면 이의 없이 모두가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원외 정당체제는 원내 중심 체제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의원 자신들이 선출한 원내 대표보다는 당원들이 선출한 원외 대표가 중앙당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면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체제이다.
 
원외 정당체제는 두 개의 통로를 거쳐 한국의 정치 갈등을 생성․유지․증폭시키고 있다. 첫째, 당론정치를 통해 정당갈등과 정치 갈등을 증폭시킨다. 한국의 주요 정당들은 2002년 대선이후 당권․대권이 분리되고 당내 민주화가 진행되어 과거와 같은 제왕적 대표가 갖고 있었던 권한은 없더라도 여전히 공직선거 후보의 추천, 선거 자금, 당직 임명 등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
 
즉, 당 대표나 특정 개인에게 권력이 독점되어 있는 ‘개인화되고(personalized) 중앙집권적인 (centralized)’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당 대표와 일반 의원들간의 관계는 수직적인 형태를 띤다. 의정 활동을 행하는데 중앙당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의원들은 당에서 마련한 전력과 행동을 기본 요소로 삼아 자신의 지역구 실정에 적합한 형태로 변형시켜 의정에 임하게 된다.
 
당 지도부의 의지가 반영된 소위 당론이 개인의 의견보다 중시된다. 다시 말해, 원외 정당체제는 필연적으로 당론 정치를 강화하면서 정당 갈등을 심화시킨다. 2004년 17대 첫 정기 국회에서 4대 개혁 입법을 둘러싸고 전개된 상황에서 보듯이, 여야 거대 정당간에 당론과 당론이 부딪칠 경우, 결국 국회는 파행되고 정치는 실종된다. 그런데, 이러한 당론 정치의 핵심에 당 대표와 원외 정당체제가 위치하고 있다.
 
원외 정당체제가 정치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통로는 의원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모든 사회와 조직에는 행동 규범이 있는데 의회 불문율이란 의회 과정에서 의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행동규범이다.
 
이와 같은 불문율은 의회 과정을 질서있게 조작해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의회 정치의 제도화는 의회 기능이 활성화, 다변화, 효율화되는 과정인 데 이를 위해서는 생산적인 불문율의 발달이 필수적이다.
 
성숙한 의회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미국 정당과 의회에서는 크게 초선의원의 수습기간에 대한 불문율(apprenticeship), 선임자 특권에 관한 불문율(seniority rule), 상호호혜에 관한 불문율(reciprocity rule), 의원 상호 예의에 관한 불문율(the rule of personal courtesy), 의원 긍지에 관한 불문율(institutional patriotism), 의정업무에 관한 불문율(the rule of legislative work) 등의 다양한 수평적 불문율을 갖고 있다.
 
특히, 미국 의원들은 대통령제하에서 의회의 본질적인 기능은 여야 구별 없이 행정부를 견제하여 궁극적으로 국정 운영의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반면, 한국 의원들은 이러한 인식이 부재하고 국회와 정당은 지시․복종의 수직적인 불문율만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상호 존중보다는 상호 비난의 불문율이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수직적 불문율이 형성되는 중심에 당 대표와 원외 정당체제가 있다는 것이다.

3. 대안
 
원외 중심 정당 체제가 존속하는 한 한국 의회 정치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하다. 임의적인 결사기관인 정당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지배하는 모순은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의회를 살리기 위한 한 출발점은 비록 과격하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각 정당들이 빠른 시기에 허황된 원외 대표 체제를 종식시키고 강제적 당론을 폐지하는 용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만이 병들고 황폐화 된 한국 국회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주요 국가 현안에 대해 강제적 당론과 강제적 당론이 격돌하면 대화와 타협의 상생 국회는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의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하고 오로지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의 당론만이 채택되거나 이를 막기 위한 여야간 죽기살기식의 대립과 파행만 있을 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국 국회가 ‘선천성 상생 결핍증’을 치유해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선진 의회를 구축하는 것은 단순히 초선 의원 수를 늘리고 국회법 조항을 몇 개 고친다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탈산업화와 세계화로 사회의 복잡성이 파편화되고 정당이 권위적 조정 기제로 작동하지 못하며 유권자의 정치 선호도도 가변성이 높게 되는 상황에서는 분점정부의 출현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시대 변화 상황에서 원내 중심 체제 구축은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증대시켜 대통령과 의회, 여야 정당간의 교착상태를 완화시키는 순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지해야 한다.
 
원외 정당체제 해체와 강제적 당론 폐지이외에 의원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시켜 국회의 효율성(effectiveness)을 증대시켜야 선진 의회 민주주의 구축을 위한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 자율성(autonomy)이란 의원 개개인이 어느 정도 동등한 자격을 갖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가를 의미하는 것이며, 전문성(speciality)이란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펼치는 데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지를 뜻한다.
 
그런데, 의원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어젠다 설정은 통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과거 국회 차원에서 국회 정상화를 위한 논의는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다른 정치관계법의 개혁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런데 국회법 개정만으로는 국회 정상회가 성취되지 않는다.
 
의정활동의 주체인 국회의원은 국회의 내부적 요인만이 아니라 국회밖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회법이나 상설 규칙은 아무리 치밀하게 규정해도 국회운영의 전부를 규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국회 개혁은 국회법이나 국회 규칙의 개정을 넘어서 정당 구조, 의원 충원에 영향을 주는 선거제도와 규칙, 그리고, 의원들의 정치 자금 모집에 영향을 주는 정치 자금법에 있어서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즉, 국회 정상화를 위한 개혁은 국회밖의 선거 및 정당 등 외부의 구조적 요인과 밀접한 연계속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빅뉴스]
기사입력: 2007/02/20 [10:56]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