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대통령 뽑자는 졸속 개헌
대통령 궐위 시 잔여임기 문제 해결할 수 있나
 
변희재 기자
청와대에서 개헌안 발의를 예정된 3월 초에서 3월 말로 늦추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윤승용 홍보수석은 “원포인트 개헌이라 단순할 줄 알았는데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4년제 연임제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대통령 궐위시 잔여임기 때 후임자는 어떻게 뽑을 것인가, 잔여임기도 1년으로 할 것인지 2년으로 할 것인지 등 미묘한 문제들이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노대통령이 밝힌 원포인트 개헌안의 핵심 사안은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고, 총선과 날짜를 맞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의 운영원리를 규정한 헌법에서, 국가원수와 입법부의 구성 방식만 슬쩍 바꿀 수 있느냐는 비판은 시작부터 끊이지 않았다.
 
원포인트 개헌안이 통과되었다고 치자. 바로 청와대에서 이제야 깨달은 대통령 궐위시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현행 헌법 상으로는 총리가 대행을 하며, 60일 안에 재선거를 치르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그 임기는 잔여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5년 임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이 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새로운 대통령이 4년 임기를 다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억지로 끼워맞춘 국회의원 선거일은 대선과 어긋나게 된다. 같은 4년 중임제를 적용하는 미국의 경우는 부통령이 잔여 임기를 승계하며 임기를 맞춘다. 그럼 한국에서도 총리가 잔여임기를 채우면 되지 않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미국은 명확히 정부통령제를 시행하면서, 대통령과 부통령이 함께 국민적 선택을 받는다. 부통령 역시 국민으로부터 선택된 사람이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제 하에서는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은 국민적 심판인 탄핵으로 물러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럼 탄핵당한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가 잔여임기를 채워도 되는가?
 
현재 상황에서는 정부통령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대통령 궐위 시 임기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윤수석은 “정부통령제 도입은 검토하지 않고, 국회에서 후임자를 뽑으면 된다”고 하는데, 이는 대통령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발상이다. 입법부인 국회에서 행정부 수반을 뽑는다면 3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대통령제 하의 헌법정신 자체를 어기는 문구가 헌법에 삽입될 판이다. 어떻게 입법부에서 행정부 수반을 뽑을 수 있냐는 말이다.
 
또한 그 스스로 밝힌 대로, 잔여임기를 1년이나 2년으로 한다면, 역시 대선과 총선 날짜가 다시 달라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노대통령이 대선과 총선 날짜를 맞출 수 있다는 20년만의 기회는 어떻게 되는 건가.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다. 현재의 대통령이 차기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면,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임명권을 갖고 있는 공영방송사, 공기업, 공사 등에 대한 관련 법규도 모조리 개정해야 한다.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지난 해, 여론이 반대한 정연주 KBS 사장을 연임시켰다. 지금 현행 대로 운영한다면, 대통령이 임명한 방송사를 비롯한 공공기관 장들은 차기 선거에 대통령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대통령 재선을 허용한다면 모든 공기관을 대통령의 입김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합의하지 않고, 무작정 4년 중임으로만 바꾼다고 책임정치가 구현되겠느냐는 말이다.
 
청와대는 일단 3월 7일 정도에 개헌안을 제출한다는 입장이다. 과연 이러한 단시일 내에 대통령 궐위 시 후임자 선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손쉬운 해법인 정부통령제를 도입하자 하면, 애초에 노대통령이 약속한 권력구조 문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선을 넘게 된다. 정부통령제는 지역구도 해결을 위한 권력구조 개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한나라당의 빅3 선거에서, 손학규 전 지사를 놓고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 간에 부통령 빅딜이 벌어질 만한 사안이다.
 
최근 홍윤기 교수와 박명림 교수 등이 <헌법 다시보기>란 책 출판회를 열었다. 시민들 중심으로 여성, 평화, 생태 등 새로운 헌법을 구상하자는 논의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홍윤기 교수는 “노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국회에서 20일 안에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물의를 빚었다.
 
시민들 중심으로 헌법을 만들자고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조차도, 노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안의 허구성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개헌논의 자체가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다. 물론 개헌안을 제출할 당사자인 노대통령 스스로도 몰랐으니 일개 학자를 탓할 일은 아니다.
 
청와대의 ‘원포인 개헌안’이 주목된다.  [e조은뉴스 기사제휴사=빅뉴스]
기사입력: 2007/02/27 [09:30]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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