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 독도(獨島:Dokdo)
 
김민수 칼럼니스트
▲   김민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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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대한국령(大韓國領:Korean territory)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의 울릉도(鬱陵島)와 독도(獨島:Dokdo) 사이에 국제법적으로 불법적인 국경선을 임의로 획정하고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와 독도(獨島:Dokdo)를 일본 영토로 불법적으로 표기한 왜곡 교과서를 검정 승인하고 독도(獨島:Dokdo)의 영유권을 주장하여 대한국(大韓國) 영토 주권을 침해하는 외교청서,방위백서를 재발간하였다.

일본 정부의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와 독도(獨島:Dokdo)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외교청서,방위백서 재발간,학교 교과서의 검정 승인은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 독도(獨島:Dokdo)에 대한 재침략 도발이므로 즉각적인 대한국(大韓國) 영토 주권 침해의 시정을 촉구,대한민국지도에 대한해(동해) 대한해(서해) 대한해(남해)를 병기하고 국제수로기구(IHO)에 대한국령(大韓國領:Korean territory) 대한해(大韓海)의 Sea Of Korea 단독 표기를 요구해야 한다.

독도(獨島)는 동도(東島), 서도(西島) 2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동도의 면적은 7만3297㎡이고, 서도의 면적은 8만8639㎡로 서도의 면적이 조금 더 넓다. 독도(獨島)는 우산도(于山島), 자산도(子山島), 삼봉도(三峰島), 요도(蓼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던 대한국의 고유한 영토이다.

신라국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異斯夫)가 울릉도와 우산도, 죽서도(竹嶼島), 관음도를 아우르는 우산국(于山國)을 편입한 이래로 대한국의 영토가 되었고 조선국 초기에는 독도를 우산도ㆍ요도ㆍ삼봉도 등으로 불렀으며 성종1(1470)년에 함경도 영흥(永興)에 사는 김자주(金自周)가 섬을 관찰해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삼봉도(三峰島)라 불렀다.

조선국 태종 대에 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워 두는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취했다. 이 공도정책(空島政策)의 틈을 이용하여 일본의 어부들이 울릉도(鬱陵島)에서 불법적으로 고기를 잡아갔다.

안용복(安龍福)은 40여 명을 이끌고 울릉도에 들어가서 일본 어부들을 몰아내고 일본까지 나아가서 일본으로부터 다시는 울릉도에 오지 않겠다는 약속과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국 영토라는 서류까지 받아 왔다. 독도를 자산도(子山島)라고 불렀으며 3년마다 관리를 파견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였다.

정조18(1794)년에 수토관(搜討官)으로 파견되었던 한창국(韓昌國)은 독도를 가지도(可支島)라고 부르고 바다사자인 가지어(可支魚)를 잡아 왔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大韓帝國) 칙령 41호(勅令 四十一號)를 제정하고 대한제국이 독도의 주권국임을 전세계에 공포하였다. 대한제국 칙령 41호는 울릉군의 관할 구역을 울릉 전도와 죽도(竹島)ㆍ석도(石島)로 규정하고 있으며 죽도는 울릉도 바로 옆의 죽서도(竹嶼島)이고 석도가 독도(獨島)이다.

1906년 울도(鬱島:울릉도) 군수 심흥택(沈興澤)은 우산도라 부르던 독도를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고한 공식 문서에서 독도(獨島:Dokdo)라고 처음 사용하였다.

돌섬을 음역하면 독도이며 의역하면 석도(石島)이다. 1909년 11월 대한국(大韓國:Korea) 최초로 개관한 창경궁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을 계승하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 독도(獨島:Dokdo)를 표기한 고지도를 상설전시, 교육홍보하고 역사적,국제법적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와 독도(獨島:Dokdo)의 영유권을 확립하여 대한국(大韓國:Korea) 115년 역사를 바로세우고 일본 정부의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 독도(獨島:Dokdo) 침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897년 10월 12일 백악(白嶽:북악산)과 목멱(木覓:남산) 사이의 경운궁(慶運宮) 대안문 앞 황단(皇壇)에서 천제(天祭)를 올리고 대한국(大韓國) 1대 광무제에 등극하며 천하에 큰 한(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므로 국호(國號)를 대한(大韓)이라 하고 1897년을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천명하여 대한시대(大韓時代)가 시작되어 대한제국(大韓帝國)의 국호 및 영토,영해가 1919년 4월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계승되었다.

1919년 3·1대한광복운동 후 4월 10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국인 천여 명과 신한청년당이 주축이 되어 29인의 임시의정원 제헌의원이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으며 4월 10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의 개원 회의에서 국호는 대한(大韓)으로 정체(政體)는 민주공화제를 의미하는 민국(民國)으로 각각 의결함으로써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탄생을 보았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여 1조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으로 함’이라 천명함으로써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2차 의정원 의원 57인이 참석하여 의정원 의원을 선출했으며 의장은 이동녕, 부의장은 손정도를 선출했다. 의정원은 법률안 의결, 임시 대통령 선출 등 국회와 같은 기능을 했다.

의정원은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골간으로 한 ‘임시헌장‘을 채택한 뒤 선거를 통해 ‘국무원‘을 구성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 이승만을 추대하고 내무 안창호, 외무 김규식, 군무 이동휘, 재무 최재형, 법무 이시영, 교통 문창범 등 6부의 총장을 임명한 뒤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였고 한성에는 한성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연해주에는 대한국민의회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9월 상해 임시정부에 통합되었다.

한반도(韓半島:Korean Peninsula) 제주도 간도(間島) 대한해(Sea Of Korea) 독도(Dokdo) 울릉도를 비롯한 인접 도서,해양을 통치하고 태극기(太極旗),애국가를 상징으로 한 대한국(大韓國)의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제주도에서 중국이 이민족국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건축한 만리장성(萬里長城)의 남동쪽 간도(間島)까지 남북으로 4천리를 통일(統一)했으며 1900년 10월 25일 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칙령(勅令) 41호를 공포하여 강원도의 군으로 승격시킨 울도군(鬱島郡)의 관할 구역으로 울릉도(鬱陵島),독도(獨島)를 포함시키고 대한국 관보를 통해 공포했다.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는 일본제국주의의 대한제국 침략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1904년 1월 23일 국외중립(局外中立)을 선언하였으나 일본제국주의는 1904년 2월 8일 한반도(韓半島:Korean Peninsula) 간도(間島)에서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대한국 한성(漢城)을 공격하여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을 점령한 후 1904년 2월 23일 대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국 영토를 일본의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갑진늑약(甲辰勒約:한일의정서)을 불법 늑결(勒結)하였다.일본제국주의는 러일전쟁의 승리를 위해 무력을 동원하여 1905년 2월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의 대한국령(大韓國領) 독도(獨島)를 비롯한 대한국(大韓國)의 군사 요충지를 불법 점령하였다.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沈興澤)은 독도를 울릉군 소속이라고 밝혀 독도(獨島)가 대한국의 영토이며 울릉군에 소속된 행정관할구역임을 확인하였으며 1907년 현성운(玄聖運)이 제작한 대한전도(大韓全圖)와 현공렴(玄公廉)이 1908년에 제작한 대한제국지도(大韓帝國地圖)에 대한해(大韓海)로 표기하였고 학부(學部)의 검정을 받았다.

일제 총독부가 1910년 8월 대한국(大韓國) 영토를 불법 병탄(倂呑)하고 1929년 대한해(Sea Of Korea)를 일본해로 바꿨으므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지도에 대한해(동해) 대한해(서해) 대한해(남해)를 병기해야 하며 국제수로기구(IHO)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4판에 대한국령(大韓國領:Korean territory) 대한해(大韓海)를 Sea Of Korea 단독 표기해야 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대한국(大韓國)의 주권과 한반도와 제주도,울릉도(鬱陵島),독도(獨島),대한해(大韓海) 등 영토,영해를 되찾았으며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제주도,울릉도,독도(獨島)를 일본에서 분리되는 땅으로 명시한 지령(SCAPIN) 677호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1948년 8월 15일 서울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정체만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전환하고 국호 및 영토를 계승한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는 1952년 대한민국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인 독도(獨島)를 포함하는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평화선)을 선포하고 1954년 독도(獨島) 남동쪽 암벽에 ‘韓國領‘과 태극기(太極旗)를 새겨놓았다.

국제수로기구(IHO)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에 대한국령(大韓國領:Korean territory) 대한해(大韓海)의 Sea Of Korea 단독 표기를 환원해야 한다.




기사입력: 2012/08/13 [17:3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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