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獨島:Dokdo)는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에 있다
 
김민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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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대한국령(大韓國領:Korean territory)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의 울릉도(鬱陵島)와 독도(獨島:Dokdo) 사이에 국제법적으로 불법적인 국경선을 임의로 획정하고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와 독도(獨島:Dokdo)를 일본 영토로 불법적으로 표기한 왜곡 교과서를 검정 승인하고 독도(獨島:Dokdo)의 영유권을 억지 주장하여 대한국(大韓國) 영토 주권(領土 主權)을 침해(侵害)하는 외교청서,방위백서를 재발간하였지만 독도(獨島:Dokdo)는 1897년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대한국(大韓國)을 건국한 이후 115년간 대한국령(大韓國領)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와 독도(獨島:Dokdo)를 일본 영토로 불법 표기한 외교청서,방위백서 재발간,각급학교 교과서의 발간,검정 승인,채택은 묵과(默過)할 수 없는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 독도(獨島:Dokdo)에 대한 침략(侵略) 도발이므로 즉각적인 대한국(大韓國) 영토 주권(領土 主權) 침해의 시정을 촉구, 지도에 동대한해(East Korea Sea) 서대한해(West Korea Sea) 남대한해(South Korea Sea)로 표기하고 국제수로기구(IHO)에 대한국령(大韓國領:Korean territory) 대한해(大韓海)의 Sea Of Korea 단독 표기를 요구해야 한다.

독도(獨島)는 동도(東島), 서도(西島) 2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동도의 면적은 7만3297㎡이고, 서도의 면적은 8만8639㎡로 서도의 면적이 조금 더 넓다.

독도(獨島)는 우산도(于山島), 자산도(子山島), 삼봉도(三峰島), 요도(蓼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던 대한국의 고유한 영토이다. 신라국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異斯夫)가 울릉도와 우산도, 죽서도(竹嶼島), 관음도를 아우르는 우산국(于山國)을 편입한 이래로 대한국의 영토가 되었고 조선국 초기에는 독도를 우산도ㆍ요도ㆍ삼봉도 등으로 불렀으며 세종실록에는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의 부속 도서를 우산도(于山島)와 무릉도(武陵島)로 하였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우산도를 울진현 소속으로 기록하였다. 성종1(1470)년에 함경도 영흥(永興)에 사는 김자주(金自周)가 섬을 관찰해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우뚝 솟아 있어 삼봉도(三峰島)라 불렀다. 조선국(朝鮮國) 3대 국왕 태종 대에 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워 두는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취했다.

조선국(朝鮮國)의 공도정책(空島政策)의 틈을 이용하여 일본의 어부들이 울릉도(鬱陵島),독도(獨島:Dokdo)에서 불법적으로 고기를 잡아가자 안용복(安龍福)은 40여 명을 이끌고 울릉도,독도(獨島:Dokdo)에 들어가서 일본 어부들을 몰아내고 일본까지 가서 일본 막부(幕府)로부터 다시는 울릉도에 오지 않겠다는 약속과 울릉도(鬱陵島)와 독도(獨島:Dokdo)가 조선국(朝鮮國) 영토라는 서계(書契)까지 받아 왔다.

조선국(朝鮮國)은 독도를 자산도(子山島)라고 불렀으며 3년마다 관리를 파견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였다. 정조18(1794)년에 수토관(搜討官)으로 파견되었던 한창국(韓昌國)은 독도를 가지도(可支島)라고 부르고 바다사자인 가지어(可支魚)를 잡아 왔다. 1899년 12월 15일 내부 대신(內部 大臣) 이건하(李乾夏)가 아뢰기를 “울릉도(鬱陵島)를 개척한 지 여러 해가 되어 호구가 늘어나고 토지가 점점 개간되는데 시찰위원(視察委員)을 임용하여 해도(該島)에 가서 일체 정형을 자세히 조사하는 동시에 주민들을 안착시키게 함으로써 조정에서 돌보아주는 뜻을 보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大韓帝國) 칙령 41호(勅令 四十一號)를 제정하고 대한제국이 독도(獨島:Dokdo)의 주권국임을 전세계에 공포하였다. 대한제국 칙령 41호는 울도(鬱島:울릉도)군의 관할 구역을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ㆍ석도(石島:독도)로 규정하고 있으며 죽도(竹島)는 울릉도 바로 옆의 죽서도(竹嶼島)이고 석도(石島)가 독도(獨島)이다. 1906년 울도(鬱島:울릉도) 군수 심흥택(沈興澤)은 우산도라 부르던 독도를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고한 공식 문서에서 독도(獨島:Dokdo)라고 처음 사용하였다.

돌섬을 음역하면 독도이며 의역하면 석도(石島)이다. 1909년 11월 대한국(大韓國:Korea) 최초로 개관한 창경궁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을 계승하는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 독도(獨島:Dokdo)를 표기한 고지도를 상설전시, 교육홍보하고 역사적,국제법적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와 독도(獨島:Dokdo)의 영유권을 확립하여 대한국(大韓國:Korea) 115년 역사를 바로세우고 일본 정부의 대한국령(大韓國領)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 독도(獨島:Dokdo) 침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897년 10월 12일 백악(白岳:북악산)과 목멱(木覓:남산) 사이의 경운궁(慶運宮) 대안문 앞 황단(皇壇)에서 천제(天祭)를 올리고 대한국(大韓國) 1대 광무제에 등극하며 천하에 큰 한(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므로 국호(國號)를 대한(大韓)이라 하고 1897년을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천명하여 대한시대(大韓時代)가 시작되어 대한제국(大韓帝國)의 국호 및 영토,영해가 1919년 4월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계승되었다.

1919년 3·1대한광복운동 후 4월 10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국인 천여 명과 신한청년당이 주축이 되어 29인의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제헌의원이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으며 4월 10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의 개원 회의에서 국호는 대한(大韓)으로 정체(政體)는 민주공화제를 의미하는 민국(民國)으로 각각 의결함으로써 1919년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원년이 되었다.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여 1조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으로 함’이라 천명함으로써 대한(大韓)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2차 의정원 의원 57인이 참석하여 의정원 의원을 선출했으며 의장은 이동녕, 부의장은 손정도를 선출했다.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은 법률안 의결, 임시 대통령 선출 등 국회와 같은 기능을 했다.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은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골간으로 한 ‘임시헌장‘을 채택한 뒤 선거를 통해 국무원(國務員)을 구성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國務員) 행정수반인 국무총리(國務總理)에 이승만(李承晚)을 추대하고 내무 안창호, 외무 김규식, 군무 이동휘, 재무 최재형, 법무 이시영, 교통 문창범 등 6부의 총장을 임명한 뒤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였고 한성에는 한성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연해주에는 대한국민의회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9월 상해 임시정부에 통합되었고 이승만(李承晚)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한반도(韓半島:Korean Peninsula) 제주도 간도(間島) 대한해(Sea Of Korea) 독도(Dokdo) 울릉도를 비롯한 인접 도서,해양을 통치하고 태극기(太極旗),애국가를 상징으로 한 대한국(大韓國)의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제주도에서 중국이 이민족국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건축한 만리장성(萬里長城)의 남동쪽 간도(間島)까지 남북으로 4천리를 통일(統一)했으며 1900년 10월 25일 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칙령(勅令) 41호를 공포하여 강원도의 군으로 승격시킨 울도군(鬱島郡)의 관할 구역으로 울릉도(鬱陵島),독도(獨島)를 포함시키고 대한국 관보를 통해 공포했다.

칙령(勅令) 41호는 울릉도(欝陵島)를 울도(欝島)라 개칭(改稱)하여 강원도(江原道)에 부속(附屬)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改正)하고 울도군(鬱島郡)이 울릉전도(鬱陵全島:울릉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독도)를 관할한다고 명시하였다.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는 일본제국주의의 대한제국 침략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1904년 1월 23일 국외중립(局外中立)을 선언하였으나 일본제국주의는 1904년 2월 8일 한반도(韓半島:Korean Peninsula) 간도(間島)에서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대한국 한성(漢城)을 공격하여 대한국(大韓國)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을 점령한 후 1904년 2월 23일 대한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국 영토를 일본의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갑진늑약(甲辰勒約:한일의정서)을 불법 늑결(勒結)하였다.

일본제국주의는 러일전쟁의 승리를 위해 무력을 동원하여 1905년 2월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의 대한국령(大韓國領) 독도(獨島)를 비롯한 대한국(大韓國)의 군사 요충지를 불법 점령하였다.1906년 울도(鬱島:울릉도) 군수 심흥택(沈興澤)은 독도를 울도군(鬱島郡) 소속이라고 밝혀 독도(獨島)가 대한국의 영토이며 울도군에 소속된 행정관할구역임을 확인하였으며 1907년 현성운(玄聖運)이 제작한 대한전도(大韓全圖)와 현공렴(玄公廉)이 1908년에 제작한 대한제국지도(大韓帝國地圖)에 대한해(大韓海)로 표기하였고 학부(學部)의 검정을 받았다.

일본제국주의 총독부가 1910년 8월 대한국(大韓國) 영토를 불법 병탄(倂呑)하고 대한광복운동기인 1929년 대한해(Sea Of Korea)를 일본해로 바꿨으므로 지도에 동대한해(East Korea Sea) 서대한해(West Korea Sea) 남대한해(South Korea Sea)로 표기해야 하며 국제수로기구(IHO)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4판에 대한국령(大韓國領:Korean territory) 대한해(大韓海)를 Sea Of Korea 단독 표기해야 한다.

가지어(可支魚:강치)는 경상북도 울릉도, 독도(獨島)에 서식한 물개과에 속한 포유동물로 몸길이는 수컷 2.4m, 암컷 2.0m이며 몸무게는 수컷 390㎏, 암컷 110㎏이다. 헤엄치기에 알맞는 평평한 지느러미발을 갖고 있다.

코르크색이며 보통 가슴 부분의 빛깔이 더 진하고 솜털은 없다. 수명은 약 25년이며 번식은 연 1회, 1마리를 낳는다. 임신 기간은 11개월이며 출산기는 5~6월이고 양육 기간은 10~12개월이다. 먹이는 어류와 연체동물류 등을 잡아먹으며 도서 및 연안 바위 지대에서 생활하고 계절에 따라 수백 킬로미터 이동하며 번식기에는 도서나 연안 바위 지대에서 출산과 양육을 한다. 수컷은 번식기 이외는 단독생활을 하며 암컷은 새끼들과 함께 집단생활을 한다.

울릉도, 독도(獨島)에 사는 가지어(可支漁:강치)에 대해 정조실록(正祖實錄)에는 “6월 26일 가지도(可支島)에 가서 보니 가지어(可支漁:강치) 너댓 마리가 놀라 뛰어나왔는데 생김새는 수우(水牛)를 닮았고 포수가 두 마리를 쏘아 잡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초반 4만~5만 마리에 이르던 독도 인근 가지어(可支漁:강치)는 1904년 갑진늑약 불법 늑결이후 독도(獨島)에서 157㎞나 떨어진 일본 오키섬 어부들의 남획(濫獲)으로 1950년대 완전히 멸종(滅種)되었으며 일본(日本)이 1904~1956년에 걸쳐 43년간 가지어(可支漁:강치) 16,614마리를 남획(濫獲)하여 멸종(滅種)시켰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대한국(大韓國)의 주권과 한반도와 제주도,울릉도(鬱陵島),독도(獨島),대한해(大韓海) 등 영토,영해를 되찾았으나 Sea Of Korea 단독 표기를 환원하지 못하였으며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제주도,울릉도,독도(獨島)를 일본에서 분리되는 땅으로 명시한 지령(SCAPIN) 677호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1948년 8월 15일 서울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정체만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전환하고 국호 및 영토를 계승한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는 1952년 대한민국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인 독도(獨島)를 포함하는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평화선)을 선포하고 1954년 독도(獨島) 남동쪽 암벽에 ‘韓國領‘과 태극기(太極旗)를 새겨놓았고 등대를 설치하였으며 1982년 독도를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하였다.
 
국제수로기구(IHO)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에 대한국령(大韓國領:Korean territory) 대한해(大韓海)의 Sea Of Korea 단독 표기를 환원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지도에 동대한해(East Korea Sea) 서대한해(West Korea Sea) 남대한해(South Korea Sea)로 표기하여야 한다.






기사입력: 2012/11/05 [14:0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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