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에 공부했다면 이렇게 재미있었을까?’
완도 노화 보길도 목포제일정보중고 동문 모교에 청록회장학금 50만원기탁
 
이길호 기자

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해 비췬다 / 배떠라 배떠라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온다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 온갓 고지 먼 비치 더옥 됴타

 

▲     © 호남 편집국
 

조선시대 고산 윤선도가 오랜 기간 유배생활을 하며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어부사시사를 노래했던 섬 보길도. 이곳 완도 노화와 보길도에서 뒤늦게 공부하고 있는 목포제일정보중고 동문(지역회장 전영자 2017년 졸업 현 목포과학대학 재학 중)들이 어려운 학우들을 위해 29, 장학금 50만원을 기탁했다.

 

노화 보길도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이들이 모교에 매년 50만원씩 장학금을 기탁하기로 결의한 후 첫 번째 장학금이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가난으로 공부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시절의 아픔을 잘 알기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학우들을 위해 마음을 모은 것이다.

 

이들은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배에 자동차를 싣고 해남 땅끝에 도착한 뒤, 곧바로 자동차를 달려 목포학교에 도착한다. 그런데 풍랑주위보가 내릴 때는 안타깝게 발만 동동 구를 때가 많다.

 

다행이 배우고 싶은 간절함을 가족이 이해해주어 고맙게도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지역 풍물모임으로 한 주에 한 번씩 모여 흥을 모으기도 하고 지역행사에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도 하면서 힘차게 생활하고 있다.

 

왜 공부도 못 가르칠 거면서 자식을 많이 낳았나요?”

고현주 총무(55, 1-2) 는 보길도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보길도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5남매를 남겨두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홀어머니 밑에서 집안일을 돕느라 중학교 진학을 못했다. 어린 마음에 너무나 공부가 하고 싶어서 나도 언젠가는 공부할거야.’라는 간절함을 품고 살았다.


지난 2, 중학교에서 공부할 때, 수업시간 중 간식을 먹거나 잡담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고 씨는 이런 시간도 아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자신도 모르게 공부합시다.’하고 말하곤 해서 까칠이라는 말도 듣는다. 수업시간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단어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사춘기 때는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는 엄마가 싫어서 말도 제대로 섞지 않았다. “왜 공부도 못 가르칠 거면서 자식을 많이 낳았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고 씨는 어려운 생활이었으나 억척스럽게 교육시켰고 그 결과 큰 아들은 미국에서 국제법을 공부한 후 국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안 계신 어머니, 뒤늦게나마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는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이제는 부모가 되어 공부를 시킬 수 없었던 엄마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때는 어머니가 너무 섭섭해 밭의 풀을 메면서도 말하기 싫어서 저만치 떨어져 일했다. 너무도 죄송하다.

 

제나이에 공부했다면 이렇게 재미있었을까?”

만학도가 되어 공부하다 보니 제 나이에 공부했다면 이렇게 재미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우는 하나하나가 더없이 소중하고 재미있다.



대대로 섬에서는 일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학교에 나와 보니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일만하며 살 때는 그날이 그날이었다. 마을회관에 모여 수다를 떨거나 화투를 하고 TV나 보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런데 지금은 비오고 바람 불어 날이 궂으면 집에서 한자를 써보고 컴퓨터 자판을 연습한다. 이렇게 바뀐 생활이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니다.



고 씨는 중학교 2년을 마치고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여 사회복지학과 노인심리학을 전공해서 나이 먹으면서 노인들과 삶을 나누고 싶다고.

 

대부분 노화 보길도 동문들은 중학교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까지 4년을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 당당하게 생활하고 있다.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는 29일 현재, 중학교 373, 고등학교 583명 총 956명의 만학도가 공부하고 있다. 1961년 개교 이래 일만 오천여명의 동문 중, 완도 동문은 220명이고, 그중 노화 보길도 동문 47명이 학우를 위한 장학금의 첫 씨를 뿌린 것이다.

 

 


기사입력: 2017/04/03 [09:54]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