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게 경의를
 
호남조은뉴스 칼럼리스트 문정인
▲  호남조은뉴스 칼럼리스트 문정인   ©호남 편집국
장맛비가 한바탕 거칠게 퍼붓고 나니 한결 시원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네모난 바람 냄새가 풋풋해 좋다. 시끄러운 속도 달랠 겸 도서관에 들렸다. 단정하게 정리된 책들이 나를 반긴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느긋한 도서관은 구석자리까지 꽉 찼다. 여느 때보다 학생들이 많은걸 보니 시험기간인 듯하다.

저 아이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자랐을 때 세상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최소한 공부 때문에 차별받지 않은 세상이 되어있으면 좋겠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되는 불온한 사회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극심한 불평등의 ‘헬조선’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으로 출발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도 복잡하고 해서 달달한 시집이나 한 권 꺼내 읽으려고 서성였다. 천양희 시인의 시집코너에서 한참을 배회했다. 시인은 아직도 육필로 원고를 쓴다. 그녀의 애틋한 사랑과 좌절 그리고 혹독한 생활고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시인의 시를 어떤 경로를 통해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시인의 시를 단번에 짝사랑한 적이 있다.

짝사랑이 도질까 싶어 슬쩍 철학코너로 시선을 옮겼다. 철학책은 두께부터 범상치 않다. 고대철학에서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해 지레 겁난다. 사실 지난번 들렸을 때 절반쯤 읽다 접어 두었던 ‘폭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다. 인간의 폭력이 낳은 잔혹한 역사를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잔인한 폭력을 기반 한 재력과 권력과 성욕은 ‘정의’일까, ‘현실’일까. 라는 질문에 천착한다. 폭력의 합리성과 정당성에 대한 질문이 거슬리긴 해도 저자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폭력은 절대 선이 될 수 없으며 선으로 폭력을 위안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익숙한 제목과 오래된 논쟁의 책 ‘스크라테스의 변명’을 꺼냈다. 인간은 익숙함에 학습되어 있는 동물임을 확인한 셈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유명하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소크라테스의 쩌렁쩌렁한 논리가 책을 뚫고 나올 기세다. 아테네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 했던 노구의 소크라테스는 일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철학자임이 틀림없다.

이성과 양심이 고갈된 시대 정의를 위해 기꺼이 독배를 마신 이 위대한 철학자에게 세상은 경의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얼마나 유효한 것이며 또 시대의 지성은 소크라테스를 얼마나 닮아 있을까.

각자의 길을 가자며 마지막 변명을 마친 철학자의 죽음이 과연 ‘변명’인가, 나는 묻는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변론’으로 수정할 용기는 없는가.
기사입력: 2017/07/12 [10:18]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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