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 주인 위증사건
 
장승재


 1981년도. 어느 여름 날 오후였다.  
포도밭에 놀러가기 위해 집을 나선 처녀 둘이 비포장도로의 가장자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시골 장날이라 들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완행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자욱이 일었다. 그때마다 처녀 둘은 한참씩 입을 막고 서 있다가 앞이 보이면 다시 걷곤 했다. 오랜만에 멋을 내어 차려입은 치마저고리와 머리며 얼굴도 먼지투성이로 변하고 있었다.   
 
“저놈의 버스 펑크나 나지 않고!”  
방금 지나간 200번 완행버스를 향하여 영숙이가 쫑알거렸다.   바람마저 불지 않는 시골길의 먼지는 쉬 사라지지 않았다. 버스가 지날 때마다 참으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곤 했다. 이윽고 또 한 대의 버스가 구름 먼지를 자욱이 피워내며 사라졌을 때였다.  

 “미자야, 저 놈의 차 땜에 기분 다 잡쳤다야.”  
영숙이 또 투덜거렸지만 도로 바깥을 따라 걷던 미자는 말이 없었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 얘가 어디 갔지? 영숙이 의아한 시선을 돌려 뒤돌아보니 미자는 10여 미터쯤의 거리 밖에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얘가 이 먼지 구덩이에서 무슨 숨바꼭질을…. 영숙이 기가 막혀 다가가보니 미자의 머리는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에그머니나!”  
영숙은 발을 동동 구르다 저만치 포도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 농부를 발견하고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사, 사람 살려주세요!”  
한참 후, 포도밭 주인인 듯한 오십 대의 사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거북이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미자를 목격하고는 황급히 뛰어왔다. 사내의 도움으로 지나가는 봉고차를 멈춰 간신히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미자는 영영 깨어나지 않았다.  

신고를 접한 나는 병원에 들러 당시 상황을 대략 청취한 다음 사체를 관찰해 보았다.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후두부 함몰이었다. 당시의 정황을 탐문한 나는 200번 완행버스의 타이어에서 튀어 오른 돌이 하필 길 바깥쪽을 걷던 미자의 뒷머리를 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판단하고 버스회사의 운행일지를 근거로 참고인 조사를 했다.  

사고현장을 그 시각에 통과한 차량은 경남 ○○ 바 ○○○ ○호 붉은색 완행버스로 파악되어 운전자를 추궁해보니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사고지점을 지날 때 길가를 따라 걷던 두 처녀도 본 바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운행 시간대와 방향이 일치한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포도밭에서 사고 소리를 듣고 달려온 사내의 진술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그 사내의 진술은 당시 지나간 버스는 빨간색이 아니고 노란색이었다는 거였다. 
 그러나 현장에서 찾아 낸 직경 약 12㎝의 돌에 묻은 피는 분명 미자의 혈흔이었다. 게다가 그 돌에 새까맣게 묻어있는 것은 고무성분으로 자동차 타이어의 흔적이라는 감정결과도 있었다.   

결국, 그 200번 완행버스의 운전자를 기소의견으로 송치를 하였는데 재판계류 중, 당시 포도밭 주인이 증인으로 채택되어 한 법정 진술도 노란색의 버스라는 주장이었다. 판사 앞에서 증인선서까지 해가며 빨간색 버스를 노란색이라고 주장하니 유족 측은 분노할 수밖에. 이에 유족 측은 그 포도밭 주인을 위증죄로 검찰에 고소했고 그에 대한 조사 역시 우리 경찰서에 하명되었다.   
 
사고를 낸 버스는 분명 빨간색인데 그걸 노란색이라고 하였으니 유족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위증죄였다. 사실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담당수사관은 증인을 구속하지 않고 편파수사를 한다며 또다시 진정을 하고….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었다.
 


♣ 


자, 이럴 때 위증죄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당시, 증인은 포도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 고함소리를 듣고 현장에 가보니 후두부에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조금 전 지나간 버스가 노란색으로 기억되어 그렇게 경찰에 진술하였고 또한 법정에서도 그렇다고 진술한 것인바,  

현실적으로 빨간색의 버스가 사실이라고 하나 당시, 증인은 약 200미터 거리에서 석양을 등허리에지고 먼지를 내면서 달려가는 버스의 색깔이 노란색으로 기억되어 그렇게 기억된 대로 공술하였는데, 증인을 자기의 기억에 반(다르게)하는 진술을 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기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하였다고 말이다.     

당시, 유족 측에서 위증죄의 구성요건을 알았더라면 불필요한 고소장과 경찰을 불신하는 진정서 등을 제출하지는 않았으리라!  

 

위증이란?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이 자기의 기억에 반(反)한 허위의 진술을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 형사소송법 제159조의 선서무능력자(16세 미만자, 선서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선서를 하고 위증하더라도 본죄는 성립되지 아니한다.

 

 ☞ 자기의 기억에 반하는 사실을 진술하였다면 설사, 그 증언 이 사실에 부합된다고 할지라도 위증죄가 성립된다.… 주관설(판례)

 

☞ 신문 전(前)에 선서한 경우는 그 신문 진술이 종료 한때, 신문 후(後)에 선서한 경우는 선서 종료한 때 기수로 된다.

 

☞ 선서한 증인이 기억에 반(反)한 허위의 진술을 하였더라도 그 신문이 끝나기 전에 그 진술을 철회 시정한 경우에는 위증이 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 사건의 재판 또는 징계처분이 확정되기 전까지 자수 자백하면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자.

기사입력: 2005/05/10 [09:35]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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