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13년에 가린 주한 대만 대표부
 
이원희
60년대 외팔이 검객 영화에서부터 시작해 70년 대 이소룡 열풍에 이르기까지 요즘의 한류 열기와 다른 중화 열기가 이 땅에 뜨거웠고 흔히 중국집으로 불리는 식당을 자주 찾았지만 많이 줄어 든 상태다. 가리봉이나 안산의 간화체 투성이의 재중동포 출신들이 내세운 식당들이 많이 보인다. 명동의 중국 대사관 또한 문을 닫고 광화문 교보 빌딩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대만,자유중국으로 표기되던 끝에 1992년 한중 수교로 본토의 정권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는데 주한 화교들의 거센 반발이 없지 않았고 한중 친선 농구 경기가 끝나고 선수의 손을 잡고 우는 화교 소학생의 모습이 언론에 크게 나기도... 항공 노선까지 끊겼다가 이듬래 비공식 외교관계로 복원되며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란게 생겼다. 중화민국같은 표현은 대륙의 입김 때문에 쓸 엄두를 못낸다는것
기사입력: 2005/08/12 [10:17]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주한 대만 대표부] 한중 수교 13년에 가린 주한 대만 대표부 이원희 2005/08/12/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