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40년간 지켜본 멕시코
 
신동호기자
서동수 한인 멕시코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위원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에는 나프타 논쟁이 뜨거운 걸로 알고 있다. 1968년에 멕시코에 이민 와서 멕시코 이민생활 40년을 앞두고 있는 사람으로 솔직히 말해 나프타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멕시코 국영 정유회사의 엔지니어 자격으로 1968년에 멕시코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이후, 멕시코가 그냥 좋아 정착해서 섬유회사도 운영해 보고, 또 현지 환경회사 고문 등으로 멕시코 경제현장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오랜 기간 살아오는 동안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온 멕시코, 그리고 나프타와 관련해서 지금 한국에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멕시코에 대해 조국에 있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이글을 쓴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멕시코에서도 TV를 통해 한국 방송을 시청할 수가 있다. 물론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뉴스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방송된 지 1~2시간 이후면 바로 볼 수 있다. 과거에 멕시코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던 한국의 격렬한 시위 모습을 보며 무작정 한국을 걱정하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TV나 인터넷을 통해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다 자세하게 한국소식을 접할 수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얼마 전 한국 TV를 보니, 북한이 동해에 미사일을 발사해서 뒤숭숭한 상황인데도 서울에서는 한미 FTA 2차 협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규모 반대시위를 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어떤 TV 프로그램에서는 멕시코가 마치 나프타 때문에 망한 나라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나프타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수 많은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하고 있고, 멕시코 중앙광장인 소칼로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불쌍한 노점상들로 넘쳐나며, 차도 중앙에서 차 유리창을 닦아 주고 구걸하는 부랑자들이 운전자로부터 1~2페소(한화 100~200원 정도)를 받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TV가 보여준건 수십년 전부터 있어 왔던 멕시코 모습

하지만 TV화면에 방영된 이런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모습은 나프타 체결 훨씬 이전인 과거 수십년 전부터 멕시코에 원래 있어 왔던 모습이고, 또 멕시코의 전부도 결코 아니다.

내가 40여 년간 옆에서 지켜보고, 또 느끼는 멕시코는 1994년 나프타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때 과거보다 더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TV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멕시코가 나프타로 완전 폭삭 망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TV 보도에서 나프타로 인해 양산된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산비탈 지역(아마도 멕시코 피라미드 가는 길에 위치한 에카테펙 지역인 것 같다)의 빈민촌도 나프타 이후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이 지역은 1980년대 후반까지는 판자촌이었다. 하지만 이런 엉성한 나무판자로 지어진 집들이 그래도 지금은 블럭(block)으로 바뀌어져 있으니 그나마 조금 나아진 게 아닌가? 그런데 이런 에카테펙 지역의 모습이 마치 멕시코라는 나라가 나프타로 망한 이후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용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나프타에 대해 보도한 TV방송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재 멕시코의 양극화 원인을 나프타에서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양극화는 비단 멕시코만의 문제가 아니라, 16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300여 년에 걸쳐 스페인(브라질은 포르투칼)의 지배를 받았던 30여 개 중남미 전체 국가 공통의 문제다.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멕시코 양극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 장군의 멕시코 정복 이후, 인구의 1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스페인계 백인들이 권력과 부와 명예를 대대손손 독점하고, 나머지 혼혈 메스티조와 인디오들은 그 혜택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모순의 결과인 양극화는 1821년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거의 500여 년 간 이어져 온 멕시코의 양극화 현상은 나프타 때문이 아니라, 멕시코의 역사라고 하는 편이 더 옳다.  

멕시코 양극화는 나프타 탓 아닌 식민지 시대 모순의 결과

다만 반독재 투쟁으로 시작된 멕시코 혁명(1910~1917년) 이후 과도기를 거쳐 집권한 제도혁명당(PRI)이 2000년까지 71년 동안 이루어진 권위주의적 통치기간 동안 제대로 된 개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치를 했었더라면 멕시코의 양극화가 다소 해소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리고 TV 방송에서 나프타가 마치 멕시코의 외환위기와 경제난을 초래한 것처럼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멕시코는 나프타가 체결되기 전인 1976년과 1982년에도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극심한 경제난을 겪은 경험이 있다. 또 1994년 12월부터 1995년까지 약 1년 동안 지속된 ‘페소화 위기’도 겪었다.

이들 세 번의 경제위기 중 에체베리아 대통령(1970~1976년)과 포르티요 대통령(1976~1982년) 등 2명의 좌파 사회주의자 대통령의 실정으로 인해 발생한 1976년과 1982년 외환위기는 개인적으로는 멕시코에서 사는 동안 가장 큰 어려움을 주었다. 1000페소가 하루아침에 1페소로 가치가 하락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세 차례의 멕시코 경제위기의 배경은 71년간 멕시코를 통치한 제도혁명당(PRI)이 중점을 두고 추진한 국내산업에 대한 보호주의적 발전 전략이 한계에 봉착하며,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과 환율정책의 실패가 겹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멕시코의 외환위기나 경제난이 나프타에 의해서 초래되었다거나, 심화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페소화 위기’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멕시코가 나프타의 덕을 보았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1994년 1월에 나프타가 발효되고, 그해 12월에 페소화 위기가 발생하자, 같은 나프타 회원국인 미국이 멕시코의 경제위기 파장이 자국에 미칠 것을 두려워해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한 덕분에 1년 정도의 단기간 만에 멕시코판 IMF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당시 현지 전문가나 언론의 판단이다.

미국 밀입국과 관련해서는 나프타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수 많은 멕시코인들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가다가 주검으로 변했고, 지금도 이러한 미국으로의 밀입국이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이 나프타 12년의 귀결이라고 소개되었던 것 같다.

멕시코인들의 미국으로의 밀입국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과거부터 있어 왔던 일이다. 멕시코인들의 미국으로의 이동은 19세기 중반 미국과의 싸움에서 패한 결과, 당시 멕시코 영토의 절반(캘리포니아, 아리조나, 텍사스, 네바다, 콜로라도 일부 등)을 잃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사실이지, 나프타 이후에 갑자기 미국으로의 대규모 밀입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으로의 밀입국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보다 나은 삶이 보장 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것을 쟁취하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멕시코 바로 옆에 세계최대의 강국, 꿈과 희망의 땅인 미국이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그리고 그 땅은 과거 자신들의 땅이었는데...

멕시코는 브라질과 함께 중남미 30여개 국가의 최대 맹주국을 자임하는 국가다. 중남미 여타 국가와 견주어 보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국력을 가진 나라다.

지금 이 시간에도 멕시코 남부지역에서는 멕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과테말라를 비롯해서 온두라스, 니카라과 사람들이 자국보다 더 잘사는 멕시코, 현재 보다 나은 삶이 보장되는 멕시코로의 불법입국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돌아가거나 검문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멕시코인들의 미국 불법이민에 대해서도 다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방송 내용 중 나프타로 인해 초토화된 농촌을 떠나는 이농현상이 늘어나고, 중소기업의 몰락으로 실업자로 전락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도시 빈민을 형성하고, 이러한 도시 빈민이 시내 곳곳에서 노점상 형태로 크게 늘어난 것처럼 리얼하게 소개하고 있다.

멕시코의 노점상이 늘어난 이유는

멕시코의 노점상은 멕시코시티 중심의 소칼로 광장 뿐 아니라, 31개 지방도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나프타 훨씬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다만, 과거 보다 멕시코시티에서 노점상이 늘어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원인을 나프타에서 찾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주위의 현지인 친구들에 의하면 지난 1994년 이후 12년 동안 집권한 좌파 민주혁명당(PRD)의 멕시코 시정부에서 표심을 얻기 위해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노점상 허가를 남발하는 정치적 뒷거래 때문에 과거 보다 많은 노점상이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멕시코는 원유수출과 관광산업이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국가로써 제조업 기반이 비슷한 국력 규모의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취약한 나라다. 최근의 멕시코 경제위기를 이해하는데 있어 우리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 중의 하나가 ‘중국’이라는 변수다.

멕시코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 대한 경계심리가 아주 팽배해 있다. 왜냐하면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멕시코 제조업이 미국시장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고, 밀수 등을 통해 물밀듯 밀려오는 중국제품의 멕시코 유입으로 경쟁력이 없는 많은 멕시코 중소기업이 도산했기 때문이다.

특히 섬유 같은 멕시코의 노동집약적 산업은 중국산제품 때문에 거의 완전 초토화되었다. 따라서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넘어가는 멕시코 불법이민자를 이해하는 배경으로 이러한 ‘중국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00년 12월에 출범한 비센테 폭스 현 대통령은 출범 직후 제일 첫 번째로 추진한 개혁이 중국제품의 밀수로 인한 멕시코 중소기업의 줄도산을 막기 위한 세관의 부패청산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세관원들의 부패 때문에 중국산 제품이 밀수입되고, 이러한 밀수입이 멕시코 산업에 큰 영향을 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폭스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을 멕시코 최대항구인 만사니요 세관장으로 직접 임명하는 등 직전 정부에서 임명된 세관 책임자 대부분을 교체했다.

하지만 뇌물 앞에서 장사 없다고 폭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최측근 만사니요 세관장도 얼마 되지 않아 뇌물 수수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만사니요 세관의 경우 1년 사이에 4명의 세관장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서 뉴스가 된 적이 있다.

이러한 멕시코 세관의 부정부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세관원과 세무사의 부패로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중국산 제품이 하루에도 수 백개씩 컨테이너를 통해 멕시코로 그냥 들어오고 있다는 보도를 최근에도 수시로 하고 있다.

부정적이고 왜곡된 내용으로 멕시코인 감정 건드린다면…

또한 차도 중앙에서 차 유리창을 닦아 주거나 묘기를 보여주고 구걸하는 부랑자 모습도 나프타 훨씬 이전인 1970년대부터 멕시코의 어두운 모습 중의 하나로 국제사회에 쭉 소개되어 왔던 것이지, 나프타 이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나프타가 멕시코의 경제위기, 양극화를 야기시키거나 심화시킨 것이 아니라, 멕시코 정부의 정책실패와 국내정세 불안이 경제위기를 심화시키고, 사회시스템의 후진성이 멕시코 양극화를 야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옳다.

TV에서 나프타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소개된 많은 센세이셔널 한 장면도 나프타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멕시코에 있어 왔던 모습이라는 것이 멕시코 생활 40년을 통해 직접 느끼고 목격한 바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내용은 비슷한 시기에 여러 개의 한국 TV가 연속적으로 나프타로 인해 멕시코가 마치 망한 나라인 것처럼 부정적이고 왜곡된 내용을 보도해서, 멕시코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면 멕시코에 사는 수 만명의 동포와 한인후손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고, 또 G13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멕시코와 한국의 양국관계에도 득이 될 게 없다는 사실이다.
서동수 한인 멕시코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위원장

기사입력: 2006/07/24 [23:15]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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