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지사 옷 장사, 천 날라..
 
정진희
"한 벌에 3천원, 두 벌에 5천원. 자 오세요!"
[민심대장정 95일] 대구 찾은 손학규, 염색공장에서 천 나르고 시장에서 옷 팔고
텍스트만보기   최경준(235jun) 기자   
▲ 민심대장정중인 손학규 전경기도지사가 2일 대구 염색공단에 위치한 삼광염직을 찾아 현장체험을 한뒤, 업계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0월 2일 오전 8시 10분, 대구 지하철 중앙로 역 앞. 청자켓에 허름한 바지, 덥수룩한 수염, 희끗희끗한 더벅머리, 낡은 베낭을 둘러멘 한 남자가 택시에서 내렸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10여명이 그를 맞았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100일 민심대장정에 나선 지 95일째. 이날 그의 첫 일정은 3년 전 192명의 안타까운 생명을 앗아간 지하철 참사 현장에서 시작됐다.

역사 한켠에 보존돼 있던 참사 현장을 둘러본 손 전 지사는 묵념을 올린 뒤 옆에 있던 유족 송춘여(68)씨의 어깨를 가만히 움켜 잡고 위로했다. 송씨는 지난 참사로 외아들 이한(30)씨를 먼저 보내야 했다.

"서민들, 희망보다 불안이 더 커"

▲ 민심대장정중인 손학규 전경기도지사가 2일 대구 염색공단에 위치한 삼광염직을 찾아 현장체험을 한뒤, 연구소를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유족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손 전 지사는 "이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것은 국가적으로 반성을 해야 한다"며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사고 이후 수습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토로했다. 마치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한 사람들로 매도됐다는 것.

참사로 딸을 잃어버린 윤근(61)씨는 "시민들은 불태워 죽이고, 유가족은 속태워 죽이는 식의 수습을 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영창(62)씨는 "우리가 하려는 재발방지 사업 등을 잘 마무리 하고 이제는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도 "손 지사가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인가, 도움을 줄 근거를 가지고 왔느냐"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손 전 지사는 "제가 온다고 유족들에게 큰 위로가 되겠으며, 위로가 된다고 한들 도움이 되겠습니까만, 기도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왔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과 아픈 마음을 함께 하기 위해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유족들과 헤어진 손 전 지사는 다음 일정을 위해 직접 지하철 토큰을 사서 개찰구로 향했다.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손 전 지사의 표정이 어두웠다. 옆에 가서 슬쩍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힘이 안 든다고 하면 거짓말이고…"라며 턱수염을 씰룩거렸다.

지하철에 오르고 빈 자리를 찾아 앉은 손 전 지사는 쉴새없이 옆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손 전 지사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한 아주머니가 "턱수염 때문에 노숙자인 줄 알았다"고 하자, "노숙자들에게 음식 나눠주러 갔다가, 진짜 노숙자로 오해받은 적이 있다"며 밝게 웃어보였다.

시민들을 만나면 그의 첫 질문은 항상 "무슨 일을 하십니까?"로 시작된다. 상대방의 반응이 있으면 그 다음 질문은 "요즘 어떻습니까?"로 이어진다.

"그동안 들었던 민심의 소리는 무엇이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민생활이 너무 힘들다. 경제적인 것보다 심리적으로 힘들어한다"며 "좌절과 패배의식, 희망보다는 불안이 더 크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민심대장정이 아니라 노동대장정?"

▲ 손학규 전경기도지사가 2일 대구 염색공단에 위치한 삼광염직을 찾아 현장체험을 한뒤, 구내식당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두류역에 도착한 손 전 지사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비산단지 내 (주)삼광염직 공장으로 향했다. 삼광염직은 나노기술로 발수가공 및 염색을 하는 회사로 86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이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손 전 지사는 회사 측으로부터 섬유 가공 및 염색 처리 공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의 첫 임무는 원단 나르기. 천을 염색하기 전 원단 두루마리를 기계 하나에 들어갈 양만큼 나누어서 옮기는 작업이다. 두루마리 한 개 무게가 적게는 20킬로그램에서 많게는 50킬로그램까지 나간다. 몇 개 옮기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의 이마와 턱수염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손 전 지사 측 관계자가 "그동안 일을 많이 해서 팔 근육도 제법 생겼다"며 "민심대장정이 아니라, 노동대장정"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안상규 삼광염직 대표도 "그러다 몸살 나겠다"며 안타깝게 지켜봤다.

원단을 들어서 옮기는 작업이 끝나자 원단이 적재돼 있는 곳으로 직접 지게차를 몰고 가서 원단 묶음을 실어나르기도 했다. 이번에는 더 무거운 원단, 보다 못한 공장 직원이 손 전 지사의 일을 거들고 나섰다.

원단 운반 작업을 마치고 공장 내부로 들어가 염색 공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공장에서 이뤄지는 염색작업은 기계화, 자동화가 돼 있어, 손 전 지사가 할 일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손 전 지사는 직원에게 "낮은 온도에서도 염색이 되느냐?", "정전이 되면 어떻게 대처 하느냐?"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무리 자동화 되어 있다지만 사람의 손길은 반드시 필요한 법. 염색되어 나온 천을 한 방향으로 쌓이지 않도록 막대기를 이용해 쳐 주는 일이다. 손 전 지사가 엉겹결에 막대기를 잡자마자 공중에 설치된 관을 통해 물을 잔뜩 머금은 천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 민심대장정중인 손학규 전경기도지사가 2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장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잠시라도 멈추면 염색된 천이 한쪽 방향으로만 쌓이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에 끊임없이 막대기를 휘둘러 천의 방향을 바꿔줘야 한다. 손 전 지사가 이리저리 안간힘을 써보지만 처음에는 막대기를 휘두르는 자체만으로도 힘겨워보였다.

막대기로 천을 칠 때마다 물이 튀어올라 손 전 지사의 얼굴과 옷이 흠뻑 젖었다. 천이 모두 쏟아지고 나자 손 전 지사가 "별안간에 그냥…"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이마의 땀을 흠쳐냈다.

염색된 천이 다시 기계에 들어가 건조가 되고, 다시 기계에 들어가 가공이 되고…. 거의 완성된 천이 기계를 통해 쏟아지자, 선 손 전 지사가 "허허~ 이게 제가 아까 마구 때린 천이냐"며 환하게 웃었다.

공장 일을 마친 손 전 지사는 비산단지 내 견직공업 대표자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었다. "섬유산업이 언제부턴가 사양산업으로 잘못 분류되어 있다", "현실에 맞는 삼유산업 정책을 입안해달라", "국내 대기업이 산업용 섬유를 외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는데, 국내 물건을 쓸 수 있도록 조정해 달라" 등의 요구가 많았다.

"한 벌에 3천원, 두 벌에 5천원, 자 오세요."

공장 직원들과 오찬을 함께 한 뒤 손 전 지사는 대구 중구 서문 재래시장을 찾았다. 지난해 12월 대형화재로 인한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지만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장은 물건을 사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북적였다.

손 전 지사는 "재래시장을 이용합시다"라고 쓰인 어깨띠를 둘러맸다.

생선 가게 앞을 지나자 칠순이 넘어 보이는 상인이 "제발, 서민들 좀 살게 해주세요"라고 당부한다. 그 옆에서도, 또 옆에서도 "재래시장 좀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이어졌다. 손 전 지사가 일일이 악수를 하며 지나간 뒤, 한 상점 할머니가 옆 사람에게 "뭐 하는 사람인데?"라고 묻자, "대통령 후보도 모르나"라고 대꾸했다.

삶은 문어가 잔뜩 올려져 있는 좌판 앞을 지날 때 상점 안에서 한 남자가 뛰어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와, 그리 마니 털래기를 길러놨어요? 털래기 많아서 얼굴을 못 알아봤는데, 이제 보니 맞네."

손 전 지사도 반갑게 악수를 하며 인사를 건넸다. 손 전 지사가 발길을 떼려 하자, 이번에는 "대통령 출마합니까?"라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손 전 지사는 답변도 하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상점 주인은 다시 "출마 해야죠. 해야 안 합니까"라며 손 전 지사의 손을 꾹 잡았다.

부산 수산시장이라는 상점을 운영하는 박명규(51)씨. 돌아서는 손 전 지사를 향해 다시 한 마디 한다. "내가 악수하는 바람에 혹시나 대권에 나오면 표 하나 줄끼요." 박씨에게 다가가 "평소 손 전 지사를 지지했느냐"고 물었더니, "이리 나오는 것 보면 대권 나오려고 하는 거지, 할 일 없이 나왔겠느냐"며 "난 아직 누구라고 안 정했는데, 이명박씨가 좀 낫더라"고 말했다.

옷 상점 앞에 멈춰선 손 전 지사. 좌판에는 아이들 티셔츠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상가연합회 측 사람을 따라 좌판 위로 올라섰다. 또 상가연합회 측 사람을 따라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폼은 영 서툴렀지만, 손 전 지사는 곧바로 "자, 아이들 옷 좀 사가세요. 할머니 손주 옷 좀 사가세요"라고 손님을 불러모았다.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막 온 겁니다. 한 벌에 3천원, 두 벌에 5천원. 추석 때는 아이들 먹는 것도 좋지만 옷을 사줘야 합니다. 자, 오세요."

손 전 지사가 한껏 목청을 높여봤지만 좌판 앞에 손님은 없고 기자들만 진을 치고 있었다. 손 전 지사가 "기자들이 있어서 안 오는 모양이네. 자, 개시 좀 합시다"라며 기자들에게 비켜줄 것을 요청했고, 그 제서야 손님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 민심대장정중인 손학규 전경기도지사가 2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장상인들과 인사한뒤 아동복 판매를 체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큰 사이즈 옷 밖에 없다"는 손님의 불만에 손 전 지사는 "요즘 애들은 크게 입어요"라며 응수하는 장사 수환도 발휘했다. 그러나 여전히 박수 치고 발을 구르는 동작은 박자를 맞추지 못했다.

한 아주머지가 바지를 들어보이며 사겠다고 하자, 손 전 지사가 "3천원입니다"라고 했다가 주인한테 핀잔을 듣고 말았다. 바지는 한 벌에 5천원. 어쩔 수없이 손 전 지사는 만원을 받아서 7천원을 거스름돈으로 돌려줬다. 손 전 지사는 만원짜리 지폐에 침을 퉤 뱉어서 이마에 딱 붙이고는 "개시"라고 외쳤다. 이어 티셔츠 2벌을 또 금세 팔았다.

그러나 지나가는 시민들의 관심은 아이들의 옷 보다는 손 전 지사와 손 전 지사의 턱수염에 있었다. "수염 좀 깎으세요." 한 시민이 손 전 지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부끄러운 듯 급히 지나갔다.

손 전 지사는 이날 30여분 동안 2만원 어치의 옷을 팔고 좌판을 내려왔다. 서문 시장 상인들과의 간담회 장소로 향하는 손 전 지사의 뒷모습으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 첫 판매를 한 손학규 전경기도지사가 받은 만원짜리를 이마에 붙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관련
기사
"지지율? 결실의 계절이 오고 있다"

기사입력: 2006/10/04 [03:09]  최종편집: ⓒ 호남조은뉴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손학규 전 경기지사] 손학규 전 경기지사 옷 장사, 천 날라.. 정진희 2006/10/04/
주간베스트 TOP10